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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와 고양이
by kaps (*.74.152.146)
read 8952 vote 0 2002.12.04 (21:08:53)

크리스마스와 고양이 -죽음을 눈앞에 둔 들고양이가 가져다 준 소중한 성탄절선물-(제임스 헤리어트) 


언제나 크리스마스 때면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내가 그 고양이를 처음 본 것은 어느 가을날 에인스워스부인의 전화를 받고 부인이 기르는 개들 가운데 한 마리를 진찰하러 갔을 때다.처음에 나는 털이 까맣게 난 게 벽난로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적이 놀랐다."고양이를 기르시는 줄은 몰랐는데요." 내가 말했다.부인은 미소를 지었다."우리가 기르는건 아니에요. 이름은 데비인데 주인 없는 암코양이이지요.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이렇게 들른답니다. 그러면 우리는 먹을 것을 주곤 하지요.

"아주머니네 집에 있고 싶어하지는 않든가요?" "아뇨." 부인은 머리를 저었다."겁 많은 어린 녀석이에요. 단지 슬그머니 기어 들어와서 음식을 좀 얻어먹고는 훌쩍 사라져 버리지요. 꽤나 귀엽긴 한데 누구든지간에 자기 생활에 끼어드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투에요."
나는  한번 더 그 고양이를 보았다. "하지만 오늘은 시장기를 달래려고 온 것 같지는 않은데요.""그래요. 재미있는 놈이에요. 종종 집안으로 슬쩍 들어와 몇 분쯤 저렇게 난로 앞에 앉아 있기도 한답니다. 스스로에게 호강 한번 시켜주는  기분인  것 같아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네요." 데비의 태도에는 색다른 점이 있었다 .벽난로 앞에 깔아 놓은 두꺼운 융단 위에 꼿꼿이 허리를 펴고 앉은 데비는 웅쿠리고 눕거나 제 얼굴을 다듬어 닦는다거나 하는 행동은 도무지 하지 않고 조용히 앞 만 응시하는 것이다.검은 털에 묻은 흙이며 어딘지 야생동물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그 야윈 모습에서 나는 어떤 단서를 얻었다. 여기 이렇게 와 있는 것은 이 고양이의 생활 속에서 진귀하고 멋진 하나의 특별행사였던 것이다.

데비는 평소 생활에서는 꿈도 꿀수 없었던 편안한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는 셈이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데 고양이는 몸을 돌리더니 소리없이 방을 빠져나가 사라져버렸다."데비는 항상 그래요." 에인스워스 부인이 웃었다. "10여 분 이상 머무는 적이 없답니다. 에인스워스부인은 유쾌한 얼굴을 한 40대의 뚱뚱한 여인으로 수의사에게는 이상적인 고객이었다. 부유하고 씀씀이가 후한데다가 다리가 짧은 사냥개를 세 마리나 집에서 기르고 있었던 것이다.

버릇처럼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개들 가운데 어느 한 놈의 안색이 조금만 더 안 좋아 보여도 개 주인은 전화통으로 허겁지겁 달려가서 큰일이나 난 것처럼 야단을 떨었다. 그래서 나는 에인스워스부인댁에 자주 불려 갔지만 거의가 대수롭지 않은 일들이었기에 흥미를 끄는 그 고양이를 자세히 관찰할 기회가 종종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다. 세 마리의 사냥개는 난롯가에서 코를 골며 늘어져 있는데 데비는 그들 한가운데 들어가 앉아 으레 그럿듯이 허리를 곧게 펴고는 이글거리는 석탄불을 홀린 듯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녀석과 좀 사귀어 보리라. 해서 나는 끈기있게 달래고 부드러운 말을 건 끝에 마침내 한 손가락으로 얼굴을 쓰다듬어 주는데 성공했다 .녀석도 내 손에 뺨을 문질러대며 재롱을 떨었으나 곧 떠날 채비를 했다. 집을 나선 고양이는생나무울타리 사이로 잽싸게 빠져나가서는 비에 젖은 들판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리고는 한점 검은 모습이 되었다가 그것마저도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는걸."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에인스워스부인이 내 옆으로 바싹 다가왔다."글세, 우리도 도저히 그 행방을 찾아내지 못했답니다."  

내가 또다시 에인스워스부인의 전화를 받은 것은 크리스마스날 아침이었다. 몹시 미안해하는 듯한 말투였다. "헤리어트 선생님,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귀찮게 굴어서 미안해요." 워낙 예의바른 부인이지만 목소리에 다급함을 숨기지 못했다."데비 때문이에요. 어딘지 이상한 것 같아요. 빨리 와주세요, 네?" 장터를 지나면서 나는 크리스마스날 대로의 비오는 거리의 풍경은 디킨스의 소설에서 묘사된 그대로라는 생각을 다시 했다. 텅 빈 광장에는 자갈 위에 눈이 수북하고 낡은 지붕에도 처마로 떨어져 내릴 듯이 눈이 쌓여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의 창마다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의 알록달록한 불빛이 마치 차갑고도 하얀 산을 향해 들어오라고 따뜻하게 손짓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에인스워스부인의 집은 번쩍거리는 장식품들과 호랑가시나무 가지로 멋지게 꾸며 놓았으며 칠면조와 그 속에 채워놓는 세이지와 양파의 향긋한 냄새가 부엌으로부터 흘러나와 온 집안에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라운지로 나를 안내하는 부인의 눈에는 고통의 빛이 역력했다. 데비는 꼼짝 않고 모로 누워 늘어져 있었는데 바로 옆에는 검은 새끼고양이 한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최근 몇 주일동안 데비를 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두 시간쯤 전에 비틀거리며 들어오더군요. 입에는 저 새끼를 물고서요. 그러더니새끼를 양탄자 위에 놓더라구요. 처음에는 나는 그저 재미있는 일이군 하고 생각 했었지요. 하지만 곧 어딘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았어요."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데비의 목과 늑골을 손으로 쓸어 보았다. 전에 없이 마른데다 털은 더러웠으며 진흙이 말라 붙어 있었다. 눈꺼풀을 뒤집어 보니 죽음을 예고하는 하얀 결막이 보였다. 마음속에서 조종이 울렸다. 배를 만져 보았다. 창자 깊숙한 곳에서 단단한 큰 덩어리가 잡혔다. 임파육종. 전혀 가망이 없었다.
나는 에인스워스부인에게 말했다."지금 죽어가고 있어요. 혼수상태에 빠져 통증을 느끼지도 못합니다."

"오, 불쌍한 것!" 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헝클어진 고양이의 털 위로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져 내렸다." 그 동안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을까요! 내가 좀더 잘 돌봐 주었어야 했는데." 나는 부인의 고통과 슬픔을 같이 느낄 수 있었기에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런 다음 부드럽게 말했다. "아무도 부인보다 더 잘해줄 수는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고양이가 이곳에서 편히 묵도록 할 수도 있었는데요. 그렇게 몹쓸 병 으로 신음할 때 저 바깥의 추위가 얼마나 끔찍했겠어요. 커다란 새끼까지 낳았으니... 몇 마리나 낳았을까요?"

어떻게 알 수 있겠냐는 뜻으로 으쓱해 보였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을 것 같습니다. 혹시 한 마리만 낳았는지도 모르지요. 가끔 그럴 때도 있거든요. 그리고 그걸 부인께 갖다 드린게지요, 안 그럴까요?" "예, 선생님 말이 맞아요, 그랬을거예요." 부인은 손을 뻗어 주먹만한 크기의 그 검고 더러운 녀석을 들어올렸다. 그놈은 작은 입을 벌리고 들릴 듯 말 듯 야옹 하고 울었다. "이상하지 않아요? 죽어가는 어미가 새끼를 여기 물어다 놓다니요. 그것도 성탄에 말입니다."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손을 데비의 심장 위에 얹었다. 박동이 멎어 있었다. 나는 그 작은 몸을 시트에 싸서 차에 갖다 실었다. 다시 내가 돌아왔을 때까지도 에인스워스부인은 계속 새끼고양이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이제 눈물은 그쳐 있었다.  "고양이를 길러 본 적은 없어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한 마리 기르시게 된 것 같군요."

새끼고양이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반드르르하고 잘생긴 수코양이가 되었으나 장난이 너무 심해 버스터(파괴하는 사람 또는 물건이란 뜻)라는 이름이 붙었다. 모든 점에서 버스터는 소심했던 제 어미와는 대조적이었다. 에인스워스 집안의 고급 양탄자 위를 마치 제왕처럼 위풍 당당하게 활보했다. 나는 그 집을 방문할 때마다 버스터가 자라는 모습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곤했다.

버스터가 부인댁에 도착한 지 꼭 일년이 되는 이듬해 크리스마스날, 내 마음 속 깊이 와 닿는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언제나 와 같이 왕진을 나갔다. 동물들은 성탄절이 공휴일임을 알아주는 법이 없다. 친절한 농부들과 성탄절을 축하하며 몇 잔 들고는 기분 좋게 막 귀가 했을 때 에인스워스부인 한 테서 전화가 왔다. "메리 크리스마스, 헤리어트 선생님! 저희 집에 오셔서 몸도 녹이실 겸 한 잔 하시지 않으시겠어요?" 나는 몸을  녹일 필요는 없었지만 주저 않고 차를 몰고 갔다. 집안에는 작년과 똑같이 유쾌한 명절 기분이 넘쳐흘렀다. 하지만 슬픔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미 대신 버스터가 있었으니까.

버스터는 에인스워스부인이 기르는 다리가 짧은 세 마리의 사냥개들을 향하여 번갈아 가면서 돌진했다. 귀를 꼿꼿하게 세우고 장난기가 가득 찬 눈을 부릅뜨고 발로 톡톡 개들을 건드리는 시늉을 하다가는 냅다 달아나곤 했다. 에인스워스부인은 깔깔 웃었다. "저애가 글쎄 저 친구들을 아주 못살게 군답니다. " 난장이 사냥개들에게 있어서 버스터의  출현은 예의범절 따지지 않는 촌놈이 아주 배타적인 런던의 한 클럽에 제멋대로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선생님께 보여드릴 것이 있어요." 에인스워스부인은 단단한 고무공 하나를 찬장에서 집어들더니 밖으로 나갔다. 버스터가 곧 쫓아나갔다. 부인은 공을 잔디밭 저쪽으로 휙 던졌다. 광택 있는 검은 털로 뒤덮인 근육을 물살처럼 일으키며 고양이는 공을 따라 비호처럼 달렸다. 그리곤 공을 물어다가 주인 앞에 갖다 놓고는 자랑스럽게 기다렸다.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개는 사냥한 짐승을 물어 오지만 고양이가 이럴 수가! 개들은 경멸한다는 투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자기네들을 충동질 하여 공을 쫓아 나가도록 만들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부인이 나를 돌아보았다. "저런 재주를 보신 적이 있으세요?"
"아뇨.한번도 못 보았어요. 정말 대단한 고양이군요."                                 

부인은 장난하는 버스터를 번쩍 들어 올려 자기 얼굴 가까이로 가져다 대며 유쾌하게 웃었다. 고양이도 만족한 듯 가르랑 가르랑 거리며 몸을 활 모양으로 구부려  부인의 볼에 황홀 한 듯이 몸을 기대었다. 건강과 만족의 화신을 보듯 그놈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불현듯 그 어미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죽어 가는 어미고양이가 마지막 힘을 다하여 새끼를 잘 돌봐 주리라는 희망을 안고 자기가 알고 있는 유일한 안식처인, 편안하고 따뜻한 이 집에 갖다놓았다고 생각한다면 좀 지나친 것일까? 어쩌면 그럴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지닌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 에인스워스부인이 나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데비도 기뻐 할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요, 그럴 거예요.  이 녀석을 갖다 맡긴지 이제 꼭 1년이 되는군요. 그렇죠?" "맞아요." 부인은 버스터를 또 다시 꼭 끌어안았다. "내 생애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답니다."

  -이상은 1983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렸던 영국의 유명한 수의사 제임스 제임스 헤리어트의 실화입니다. 동물에 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쓴 작가이기도 합니다.성탄절에 맞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라 함께 읽었으면 해서 글 올립니다.- 외국잡지에서 나오는 감동적인 동물스토리는 앞으로도 계속 올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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