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법인 한국동물보호협회
런던에 있는 내 방에는 고양이 한마리가 살고 있다.

지금껏 난 네마리의 고양이를 가져 봤다. 스물두살때 한번, 서른살때 한번, 서른셋에 한번, 그리고 지금 또 한마리다.

오늘은 첫번째 고양이, 야옹이의 이야기.



1991년 봄. 우리 과에서는 무슨 이유에선가 학생회실에서 철야농성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등록금 동결이었던 것 같은데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무렵 대학에서 벌어지는 철야농성이란걸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게 말이 농성이지 거의 밤새 노는거다. '디비디비딥' 이나 '뻥이요' 같이 여럿이 둘러앉아 등두들겨 패는 게임이 주종을 이룬다. 술만 못먹는다 뿐이지 엠티나 별 다를게 없다.

그날도 그렇게 밤 늦게까지 놀다가 학생회실에서 새우잠을 자던
나는 새벽녁 작은 소리에 눈을 떴다. 고양이였다.

아주 가까운 데서 들려오는 고양이 우는 소리. 추워서였을까, 아님 배가 고파서, 외로와서? 여하튼 나는 그 소리가 이끄는데로 말 그대로 끌려 갔고, 주먹보다 조금 큰 작은 고양이 한마리가 어느 학생회실에 혼자 갇혀 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 앙증맞은 모습에 한눈에 반해버린 나는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이 녀석을 불렀지만, 고양이란 넘은 그런다고 아무한테나 째깍 달려드는 녀석이 아니었다. 한시간이나 공을 들인 덕에 새끼
고양이를 내 품에까지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그르릉 거리는 고양이 특유의 좋아하는 소리로 보아 내 인내심에 설득당해 맘을 준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 고양이를 내 방에까지 데리고 왔다.

일찍부터 부모를 떠나 살고 있던 내게 그 고양이는 작은 위안거리가 되었다. 옹알거리면서 따라다니고 발에 붙어 그르릉거린다. 침대에 같이 누이면 팔을 베고 잔다. 주인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강아지하고는 그 몸동작이나 느낌이 좀 다르다. 은근하다고 할까. 첨에는 만화 주인공 이름을 따서 가필드라고 붙였던 녀석의 이름은 조만간에 부르기 쉬운 야옹이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두어달, 참으로 즐겁게 지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고양이를 애완동물로 집안에서 키우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정보도 없었다. 동물 병원에 가도 고양이에 대해 아는 의사가 별로 없었다. 무엇을 먹이로 줘야 하며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내게 있어서 고양이라는 동물에 대한 정보는 줏어들은 것들 뿐이었다. 고양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더라. 고양이는 집에만 정을 준다더라. 고양이는 어느날 갑자기 도망가 버린다더라. 고양이는 한을 품는다. 복수한다. 고양이에게 있어서 사람은 도구일 뿐이다.

그래도 그 어린 야옹이는 너무 예뻤다.

그러나, 무지속에서 어영부영 하는 동안 야옹이는 점점 커갔다. 처음의 두배, 세배로 커졌다. 힘도 세지고 발톱도 날카로와졌으며, 발정기가 오자 성격도 앙칼지게 변했다. 벽지를 찢고 가구를 갉기 시작했다. 들은 이야기와는 달리 녀석은 대소변도 잘 가리지 못했다. 밤새 큰 소리로 울고 (고양이 특유의 잦고도 강력한 발정 때문이었지만 당시의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기타 잭을 끊고 침대 다리를 망가뜨리고 컴퓨터를 넘어뜨렸다. 말을 듣게 할 수가 없었다. 때리기도 하고 벌도 세웠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번은 뭔가 심하게 문제를 일으켰고, 어리고 철없던 나는 그만 말 그대로 녀석을 반 죽도록 두들겨 패고 말았다.

때리고 나선 곧바로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고양이는 원한을 품는단다. 이렇게까지 감정을 실어 손을 댔으니 저 야옹이란 넘은 나만 보면 덤비고 손을 물려고 할 것이다. 기회만 생기면 도망가고 말 것이다. 그럼 그러라지. 어차피 사람한테 정도 안주는 동물인데.

두들겨 맞은 야옹이는 방 구석에 누워 있었다. 통증이 심했을 것이다. 물릴때 물리더라도 한번 봐줘야겠다는 생각에 다가갔다. 손을 대려고 하자 또 때리는 줄 알고 앞발을 들어 막으려 한다. 그 발을 피해 배를 쓰다듬었다. 잠시 영문을 모르는 듯한 야옹이의 표정.

그리고는 뜻밖에, 내 손에 이 녀석이 가르릉거리는 진동이 느껴져 왔다. 이상하다. 원한을 품었을텐데. 맞은지 5분도 안지났는데. 누가 때렸는지도 기억을 못하나 보군. 바보아냐...

두어달 후 그런 일은 한번 더 있었다. 모든 것이 똑같이 반복되었다. 폭력과 후회, 쓰다듬음과 가르릉. 분명 바보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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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에서의 내 생활은 이제 끝나가고 있었다. 오랫동안 꿈꾸던 음악계에서, 비롯 허접한 일이나마 할 수 있는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런 외진 곳의 골방에서 살 수는 없었다. 돈도 좀 모았다. 여의도로 진출하자.

국회의사당 건너편 골목에 있는 작은 오피스텔과 전세 계약을 맺었다. 사무실도 있고 사는 사람도 있는 그런 곳이다. 야옹이는 갈 수 없다. 내가 살던 방의 벽지를 다 찢어놓고 고양이 특유의 냄새를 묻혀 놓고 밤새 운다. 숨겨서 데려간다 해도 며칠내 쫓겨날게 분명하다. 어쩔 수 없지.

데려 갈 사람을 찾았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고, 이사날은 20일 후로 다가왔다. 머 괜찮다. 어차피 고양이는 반은 야생동물인 것이고, 길에 내놔도 살아남지 않던가. 괜찮을 거다.

나는 야옹이를 데리고 내가 살던 높다란 집 바로 앞에 있던,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넓은 공원으로 갔다. 2월의 날씨는 아직도 차가웠다. 하지만 괜찮다. 고양이는 야생동물이다.야옹이를 공원 한가운데 내려놓자 어디론가 잽싸게 달려간다. 그러면 그렇지. 자유를 향해 인사한번 안하고 떠나가는구나. 홀가분하다.

그렇게 그 자리에 서서 담배를 한대 빼 물고, 시원섭섭함을 느끼며 돌아가는 순간 뭔가가 멀리서 달려온다. 야옹이다. 녀석이 내 발밑으로 돌아온 것이다. 왜 왔을까... 내가 멍하게 서 있자 또다시 어디론가 달려간다. 드디어 갔구나. 인사라도 한번 하러 온 것일까.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야옹이는 떠났다. 내가 버린게 아니라, 자유를 찾아 자기 발로 도망간 것이다.

높다란 내 방으로 올라와 창문을 열었다. 공원이 눈 아래 바로 내려다 보인다. 희끄무리한게 왔다갔다 한다. 야옹이...? 뭘 찾고 있을까? 모르겠다. 침대에 누워 잠이 든다.

다음날 아침 창을 열고 공원을 내려다 보았다. 희끄무리한 것이 있다. 설마. 젠장. 야옹이다. 내가 서 있던 바로 그 자리다. 그런데 저건 뭐지... 지푸라기와 휴지쪼가리. 바닥에 깔려 있고 그 위에 그 허연 것이 앉아 있다. 2월이다. 눈을 질끈 감는다. 내 새로운 삶이 시작될 오피스텔에 고양이는 갈 수 없다.

다음날... 허연 것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눈이 온다.

셋째날에는 휴지 쪼가리만 남고 야옹이는 없다. 드디어 갔구나. 그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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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에서 전철역으로 갈려면 반드시 그 공원을 지나야 한다. 내게 새로운 삶을 약속해 줄 사람과 만나기 위해서는, 그 다음날부터 매일같이 전철을 타야 했다. 공원을 가로지르며 야옹이가 남기고 간 지푸라기를 본다. 추웠을텐데. 도리도리. 할일이 많다. 이제 앞일만 생각하자.

공원이 거의 끝나는 지점, 3층짜리 빌라들이 줄지어 있다. 반 지하에 있는 공간은 보일러실인듯 하다. 창문이 반쯤 열려 있고 거기서 김이 새 나온다. 허연 김이. 그리고 허연 야옹이가 나온다. 나를 보고 달려온다. 다리에 몸을 비빈다. 이런. 하지만 도리도리. 난 지금 중요한 일이 있어서 가야 된단다. 여지껏 여기서 뭘 하고 있니. 내 밟에 꼬리가 밟혀 가면서도 계속 날 따라온다. 하지만 큰 길로는 무서워서 내려오지 못한다. 당연하다. 야옹이는 아기때무터 한살이 다 되도록 방안에서만 살았으니.

늦게 집으로 돌아온다. 나온다. 비빈다. 마음이... 약해진다. 안돼. 어차피 데려 갈 수 없어. 정을 뗄려면 확실하게 떼야지. 그래서 달렸다. 야옹아. 자유가 니 눈앞에 있어. 바보야.

집으로 올라왔다. 창밖으로 내다보니 어스름한 가로등 아래로 야옹이의 모습이 보인다. 보일러 실로 돌아가고 있다.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난다. 화들짝 숨는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쫓아가는 것이 아니구나. 내 발자국 소리를 구별하나. 야생동물인데. 사람에게 정이 없는데.

다음날, 그 다음날, 그 다음날.. 지겨운 반복. 뭘 원하는 거니. 데려갈 수 없어. 먹이를 줄까? 아냐. 정을 떼야 해. 요플레를 좋아했는데. 약해지면 안돼. 참치도. 배가 많이 고프겠지. 겨울철. 뭘 먹고 있을까. 알게 뭐야. 야생동물은 어떻게든 살아가는 방법이 있게 마련이야.

이사가는 달이 내일로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할때가 된
거다. 허연 김 속에서 뛰어 나온다. 녀석은 자존심도 없나. 고양이의 그 오만한 콧대는 어디갔나. 두들겨 맞을 때처럼, 내가 자기를 버렸다는 걸 기억 못하는 걸까. 단지 내 이미지만 남아서 눈에 보이면 쫓아오는 건가. 바보녀석. 아니면.

야옹이를 만져줬다. 배를 까뒤집고 좋아한다. 2월의 땅바닥은 얼음처럼 차다. 그 바닥에 누워서 배를 뒤집는다. 가르릉거린다. 눈이 반짝인다. 열흘 남짓 새에 몰라보게 말랐구나. 그 하얀 털이 때가 묻었네. 콧물도 나고... 이제 내일이면 끝이야.

누워있는 야옹이를 놔두고 발길을 돌렸다. 잠깐 걷다가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야옹이가, 몸을 일으키고 나를 바라보고 서 있다. 분명한 착각이지만, 입을 굳게 다무는 모습이 보인 것 같다. 그렇게 잠시 멈춰 있다가 뒤로 돌아, 어디론가 번개같이 달려간다. 보일러 실이 아니다. 높다란 집 쪽도 아니다. 이제 차길이 무섭지도 않다. 허연 것이 점으로 변하고, 끝까지 돌아보지 않는다. 나는, 끝까지 그 자리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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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 갔고, 여의도를 떠났다. 새 삶은 시작되었지만 내가 그렸던 것처럼 그렇게 좋았던 것은 아니다. 사는건 어디서나 비슷한거니까.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야옹이는 왜 처음부터 자유를 찾아 떠나지 않았을까. 왜 그 추운 잔디밭에 휴지를 끌고와 둥지를 틀어가며 이틀밤을 앉아 있었을까. 왜 가까운 보일러실로 옮겨가 한참을 버텼을까. 왜 살짝살짝 밟히면서 나를 쫓아다녔을까. 왜 차가운 겨울 시멘트 바닥에 등을 눕혔을까. 왜 입을 굳게 다물었을까.

세월이 지났다.

왜... 대체 왜 나는 그때는 그 모든걸 이해하지 못했을까. 답은 너무나 간단한데. 정없는 야생동물, 한을 품는 동물, 요물, 때린 것도 기억 못하는 바보, 뭐라고 해도 좋다. 이제 나는 그 이유를 아니까 말이다.

야옹이는 그저, 나를 사랑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심하게 때린 나를 그렇게 쉽게 용서했던 거다. 그래서 기다린거다. 뭔가 잘못된거야. 이유가 있을거야. 이제 금방 와서 데려갈거야.

주먹만 할때부터 유일했던, 엄마이자 아빠이자 가족이자 친구였던, 세상의 전부였던 내가 자신을 버린 것을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게 야옹이는 어릴때만 예뻤던, 말썽만 피우는 정없는 야생동물이었을지 모른다. 내 미래를 위해 제거되야 하는 존재. 그러나 야옹이에게 나는 온 우주였다.

나는 다시 그애를 만나지 못했다. 몇년 후에 그 자리를 한번 찾아 봤지만, 쓸데없는 짓. 시간은 가고 돌이킬 수 없다.

첫번째 고양이 이야기는 이제 끝났다.



...참. 여의도의 그 오피스텔엔 쥐가 많이 살았다. 찢어진 벽지와 고양이 오줌 냄새에서 벗어나고자 향했던, 어린 나에게는 이상의 공간이었던 그 첨단의 장소에는 결국 쥐똥과 쥐가 갉아먹고 버린 쌀알들이 뒹굴었다. 혹시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요물 고양이의 복수였다면, 녀석은 참으로... 관대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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