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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은 모두가 서정시인
by 이정일 (*.207.25.189)
read 10392 vote 0 2003.03.14 (00:16:53)

<<저는 개인적으로 최재천교수의 글 내용을 좋아합니다. 늘 우리같은
마음으로 동물표현을 해놓은 책들을 자주 읽는 답니다. 다음글도 서울대
최재천교수의 글중 하나를 발췌해서 옮겨 놓으니 끝까지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동물들은 모두가 서정시인^^^


3월21일은 `세계 詩의 날'이다. 지난 세기가 저물던 1999년 제30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제정했다.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파리를 비롯하여 지구촌
곳곳에서 시 낭송회가 열린다. 형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시 한 편 읽을
여유조차 갖기 어려운 생활이지만 시의 날이라 하니 나도 모르게 시집에
손이 간다. 요즘 참 아름답고 좋은 시들이 많이 있는데 그에 비하면 읽는 이들이 너무 적은 것 같다.

동물들도 과연 시를 쓸까? 詩란 `자기의 정신생활이나 자연,사회의 여러
현상에서 느낀 감동이나 생각을 운율을 지닌 간결한 언어로 나타낸 문학
형태'라는 어느 국어사전의 정의에 따른다면 나는 이 세상 거의 모든
동물들이 다 詩人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봄이 되어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면 저마다 목청을 가다듬어 사랑의 세레
나데를 부르는 숫새들은 다 엉락없는 서정시인들이다. 그 들은 한결같이
운율이나 자수가 일정한 정형시를 쓴다. 시인마다 느낌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종에 속하는 수컷들은 모두 똑같은 틀에 맞춰 시를 쓴다.
유전자의 지시에 따라 시의 길이도 정해져 있으니 그들이 쓰는 시는
어쩌면 시조라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풀벌레들의 노랫소리는 시라기보다 음악, 그 중에서도 기악곡이라 하는편이 더 옳겠지만,어차피 음악과 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가 아닌가.
풀벌레들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시인은 단연 귀뚜라미일 것이다. 그 들은 입으로 시를 읊은 것이 아니라 윗날개를 서로 비벼 사랑의 시를
읊는다. 한쪽 날개의 표면에 마치 빨래판 또는 손톱을 다듬을 때 쓰는 줄
과 같이 오돌도돌한 부분을 다른 날개의 가장자리로 문지르며 음악을
연주한다. 그리도 단순한 악기를 가지고 어떻게 그처럼 화려한 연주를 할 수 있는지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귀뚜라미라면 그저 귀뚤귀뚤 우는 놈들만 생가하겠지만 사실 그들의
음악은 엄청나게 다양하다. 우리 나라에도 여러 종의 귀뚜라미들이 사는데 그들이 구사하는 시어만 들어도 누가 누군지 알 수 있다. 시인마다
제가끔 자기만의 詩韻이 있다. 특별히 화려한 귀뚜라미 연주를 듣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늦은 여름밤 서울대 교정으로 초대하겠다.
"호르르르륵 호 호 호"하는 왕귀뚜라미의 연주가 꾀꼬리 뺨친다. 밤 늦게
그들의 음악을 배경으로 연구실에 앉아 있노라면 "방 에는 글 읽는 소리,
부엌에는 귀뚜라미 소리"라는 우리 옛 속담의 평화로움이 내 온몸을 적
신다.

귀뚜라미와 그리 멀지 않은 친척인 여치와 배짱이 들은 날개의 가장다리
를 뒷다리로 긁으며 역시 화려한 서정시를 쓴다. 뒷다리 안쪽에 작은 돌
기들이 줄지어 나 있는데 그걸 긁어 소리를 만든다.
돌기의 크기와 수는 물론 그들이 어떻게 배열되어 있느냐에 따라 음정과 박자가 달라진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대나무로 엮어 만든 작
은 우리 속에 여치를 넣어 파는 장사들이 광화문 네거리에도 있었는데, 이젠 그 들의 시 낭송회에 참가하려면 차를 타고 한참 외곽으로 가야
한다.

같은 곤충계 시인인 매미는 좀 요란한 시를 쓰는 편이다. 귀뚜라미와 배짱이가 현악기를 사용한다면 매미는 타악기를 두드리기 때문이다. 그 작은 공명기로 어떻게 그처럼 큰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생각할수록 신기할
뿐이다. 음향공학을 연구하는 한 동료교수는 틈만 나면 내게 매미를 연
구하여 신개념의 스피커를 만들어 특허를 내면 떼돈을 벌 것이라고 부추
긴다.

그런가 하면 개구리,맹꽁이,두꺼비 들은 관악기를 분다. 소리 주머니
가득 공기를 들이마셨다가 서서히 내뿜으며 사랑가를 부른다, 관악기
중에서도 특히 스코틀랜드의 백파이프와 가장 흡사하다. 매미도 그렇
지만 개구리 등도 독주보다는 합주를 더 즐긴다. 보다 크고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냄새도 시어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자연계 거의 대부분의 시인들은 사실 다 냄새로 시를 풍긴다. 언뜻 생각하기에 소리에 비해 냄새는 단순한
거라는 느낌을 주지만, 그 냄새를 일으키는 물질의 화학구조를 들여다보면<오감도>를 뺨칠 난해한 시들이 적지 않다.

인간의 경우는 좀 다르지만 동물계의 시인들은 거의 예외 없이 다 수컷
들이다. 동물들의 시 낭송회에는 시인은 모두 남정네들이고 듣는 이는
모두 여인들이다. 하지만 나방들은 예외다, 암나방들은 동물계에서 아주
드물게 보는 여류 서정시인들이다, 절대 다수의 나방들에서는 특이하게도 암컷들이 냄새를 뿌리고 수컷들이 그들을 찾아다닌다. 그 여류시인
들의 가냘픈 시를 아주 먼 곳에서도 들을 수 있도록 숫나방들은 모두 기가 막히게 잘 발달된 안테나들을 달고 다닌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시는 거의 필연적으로 쇠퇴한다"고 개탄했던 19세기 영국의 사학자 머컬리 경의 말처럼 인간과 침팬지 등 대부분의 영장류들
의 대화에서 시어 찾기가 쉽지 않다. 간결한 언어로 그 깊은 속뜻을 전하던 낭만은 다 어디 가고,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어지러운 산문만 쏟아내
는 것 같아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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