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기들 스토리와 사진

여러분 오늘은  대만에서  기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스토리를 사진과 함께 올려 보려 합니다. 예전에는 디카로 찍은것이 없어 이미 떠난 아이들의 유골 단지로 처음 23,년전부터기른 애들부터 소개하여 나가겠습니다.

 

나는 애들이 떠날때 마다 이곳  동물 소각장에 전화로 미리 예약을 한후 바로 내 차로 그곳까지 옮긴후 한시간 넘짓한 화장 시간을 기다렸다  타고 남은 유골을  선택한 유골단지에 잘 담은후 준비한 사진을 단지에 붙이고 날짜  이름을 모두 쓴후 커버에 유골단지를 잘 넣은후 품에 안고 집으로 온다 . 이렇게 반복을 한것이 이미 다섯번이다.
 

아래의 사진을 보면  먼지가 앉지 않도록 내가 아끼는 예쁜 나무 유리책장 한칸을 비워 차례로 나열하고 그 앞에는 성당서 갖고온 두가지 촛불 그리고 애들이 마실 물그릇을 놓았다. 애들이 살아생전 잘 갖고놀던 개껌도 잊지 않았다. 단지 뒤에는 습기를 없애도록 물먹는 하마도 놓았다.  우리 애들은 나를 닮아 유난히 커피를 좋아해서 스타벅스 커피잔에 커피믹스도 꽃아 두었다. 단지 중간 마다 한국 명동성당서 사온 수녀님  인형을 놓고 각단지 위에는  작은 묵주와 하느님 조각 인형도 놓아 주었다. 이제  이미 떠나 사진의 단지에 나란히 사이좋게 함께 있는 애들 이야기 부터 하려한다.



사진 왼쪽에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쳐다보는 아이가 내가 대만에 유학와서  처음 기른 돼지 라는 이름의 흰 페키니즈 남자 아이다.   돼지의 이야기가 아마도 가장 쓸  얘기가 많을 것이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9월, 나는 대학 1년으로 아직 마음이 안놓인 아버지는 자주 다녀 가셨으며 이번은 정일 언니와 함께 갓 다녀가신후 였다. 

혼자  집근처 시장을 거닐고 있는데 어느 할아버지가 파란 작은 고랑에 작은 페키니즈 2마리를 넣고  쭈그리고 않아 두남매를 사갈 새주인이 나타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당시는 대만은 많은 페키니즈를 기르고 있었다.  나는 발길을 멈추고같이 쭈그리고 고랑 앞에 앉아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두마리 같이 사면 한마리 값으로 주겠다고 하였다.  할아버지는 집에 이 두남매의 엄마 아빠 페키니즈를 기르고 있다 새끼를 팔러 나온것 이다.  

난 마음이 약해지고 무척 외롭던 터고 워낙 개를 좋아하는지라  앞뒤를 안가리고 사겠다고 하였다 . 할아버지는 집까지 고랑을 들어다 주고  이 개들은 닭 간을 잘 먹는다고 하였다.  

나는 갖고있는 그달의 생활비를 몽땅 털어 할아버지에게 드리고 , 고랑서 나온 두 아이들은 좋아서 이리저리  점탐을 하며 실내 구경을 다녔다.  그때 부터 나는 바빠지기 시작 하였다 . 아직 오줌판 준비도 안된터라  두 애들은 편한곳에 대 소변을 누었다.  

일주일 골치를 섞은 나는 유학 선배가 집에서 냄새가 난다하고 애들이 안 예쁘다고 하자 그때만 해도 그냥 강아지 예뻐만 했지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을 터득 못한 어리석은 나는 고민끝에 조금 후회도 하며 애견상점 이 많은곳에 가서 페키니즈 두마리가 있는데 예쁜 푸들로 바꿔줄수 있냐고 물어 보았다.

지금 생각 하면 그 애견업자 맘도 좋지 선뜻 데려오라며 푸들로 바꿔 주겠다고 하였다. 그집에서 사지도 않았는데...... 그당시 대만은 정말 인심이 너무 좋고 살기가 좋았다.  밤에는 길에서 책을 읽을수 있을정도로 밝았고 치안도 너무 좋았다.    어디든지 친절하고 진심으로 대해주었다. 외국인에게 바가지도 씌우지 않았다. (22년전) 집에와서 두애들 노는것을 보니 차마 바꾸러 갈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너무 마구 싸서 화가나 고랑문을 열어두고 앞 베랜다에 밤에 벌을 주려고 내다 놓았는데 비가 왔다.  아침에 보니 건강한 남자 아이는 멀쩡한데 약한 여자애는 갑자기 부르르 떨고 입에 거품까지 물고 토하고 하였다. 병원에 가니 홍역이라고 하였다.  할아버지는 예방접종도 안하고 내게 주었는데 나도 그런 상식도 별로 갖추지 못하였다.  결국 여자 페키니즈는 눈까지 멀고 고통속에 떠나게 되었다.
 

같이 있으면서 건강하게 살은 오빠 강아지는 나의 호주 유학 친구가 놀러와서 돼지 돼지 하고 한국말 배운것으로 놀리다 결국 이름이 돼지가 되었다.    돼지는 정말로 이름답게 무럭무럭 씩씩하게 큼직하게 자랐다. 어느날  정일 언니가 와서 2년을 중국어 공부를 하며 같이 지내게 되었는데 돼지는 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 돼지는 언니를 감시하며 가는곳 마다 따라다니며 심한 참견을 하였다.   저녁 시간이면 늘 베랜다  앞에서 머리칼을  날리며 내가 오기를 기다리는 돼지였다. 

돼지는 코 근처가 늘 축축하고 지저분 했는데 축축한 코를  거실 방 할것 없이 자기 키 만큼 얼굴을 대고 쭈~욱 밀고 다니며 세안을 하여서 우리집 벽은 늘 나지막하게 더러운 줄이 그어져 있었다.   치즈 케잌을 유난히 좋아하던 돼지에다가 콜라도 잘 마셨는데 펩시콜라는 싫어하고 코카콜라만 마셨다.   당시 뭘 모르던 우리 자매는 쵸코렛을 돼지가 좋아한다며 그 표가 없을때는 홍콩에 갈때마다 잔뜩 사들고 와서 열심히 먹였다.  거기다 줄기차게 닭간을 먹이고 케잌에 맥주까지 우리는  독이란 모든 나쁜 독은 알지도 못하고 그게 돼지를 아끼는거라고 생각하고 마구 사다 먹였다. 

페키니즈는 각종 표현을 유난히 잘한다 그래서 우리 자매는 페키니즈에 대한 사랑이 남 다르다.  각종 소리와 표정으로 표현을 하고 심술도 잘 피우고 하였다 택시를 타면 기사를 보고 입을 말고 콧물 침을 튀기며 기사를 놀라게 하고 창밖의 오토바이등 모두 참견을 했다.  방학에 한국에 다녀 올때면 이집저집 부탘하여 한달씩  맡겼는데 그래도 대만 사람들은잘도 맡아 주었다.   정 없으면 병원에도 맡겼다 그때마다 뒷보습을 보며 나는 마음이 괴로웠다. 

그렇게 지내기를 13년 중간에 작은 다른 애들까지 와서 돼지는 마음의 병까지 얻게 되고 몹시 우울해졌다. 어느날 배가 부르기 시작하고 병원에서  피검사를 받으니 간이 극도로 나쁘고 심장도 너무 나빴다. 결국 복수가 차고 6개월은  복수찬 배로 그런 와중에도 갖가지 우스운 표정을 연출하던 돼지는 내가 한국에 업무로 다녀오던 마지막 날  나를 기다리다 새벽에 숨을 거두었다.  나는 그날 오후 대만에 도착하여 현관문을 열면서 돼지를 부르며 뛰어 들어갔다. 돼지는 이미 혀가 검게 변하고 눈은 뜬채 죽어 있었다. 그때가 더운 여름 6월15일이라 입가는 날파리도 있었다.  나는 통곡을 하였다.  그러나 우선 더 부패 하기 전에 화장을 해야했다.   

병원의 소개로  개 고양이 화장터가 따로 있는것을 알고 준비된 하늘 나라용 박스에 잘 넣어 화장을 시켰다. 유골은 사진과 같이 흰 도자기 단지에 넣어 집으로 들고 왔다.  비록 떠났지만 돼지는 늘 나와 있는 것이다. 우리 돼지는 나와 대만서 5번의 이사를 같이하고 화재도 같이 겪고  6층에서 불이커진 연기 투성이 상황서 나는 잠옷 만 입고 돼지 와 여권만 들고 계단을 더듬으며 한칸씩 내려왔다. 

헛딛어 계단을 구르면 돼지는 크게 다칠것이라는 생각에 어떻게 내려왔는지도 모르게 우리는 1층에 도착하고 나와 돼지는 슷검정이 되어있었다.   돼지의 모슴은 검은 페키니즈로 둔갑하고 우리의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장면이었다. 나는 우리 돼지를 너무 사랑한다. 타국서 긴 나날을  돼지와 보냈다.  언니의돼지에 대한 사랑은 나는 비교가 안된다. 언니는 그래서 지금 기르는 만두를 양주 보호소에서 보았을때 무조건 데려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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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돼지 얘기를 마치고 돼지 옆에 예쁘고 고상한 푸들이 있다.    돼지가 10살때쯤 나는 작은 사이즈의 강아지가 갖고 싶어  푸들을 한마리 구입했다.  얼마나 내성적이고 얌전한지  기른지 6개월이 지난후에야 나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이름은 내이름을 따서 중국 발음으로 메이 메이 이다. ( 美 자를 중국어로 메이 라고함).  6개월때 구정에 동물 병원에 애들을 맡기고 한국에 2주 다녀왔다.  다른 애들은 이상이 없으나 내성적인 메이는 2주간 대변을 딱 한번 보았을 정도로 단식을 했다.  주인 없고 환경이 바뀌자  슬퍼하며 밥을 거부한 것이다.  내가 돌아와서 메이를 만졌을 때는  정말로 종이짝 같다는 말이 실감이 나게 앙상했다.  아마 조금만 더 늦게 왔으면  메이는 죽었을것이다.

그후부터는 메이는 그 꽁하던 성격을 버리고 나만을 유독히  쫓아다니며 좋아했다 잠도 꼭 내 옆에서 자고 소파에도 꼭 올라와서 내 무릅을 베고 누워 있었다.  출국 할때마다  어린아이 올음을 내며 떨어지기 싫어했다. 메이는 너무 고상하고 조용하고 예뻐서  사람들에게 남다른 사랑을 받았다.   우아한 메이는 정말 내가 자랑 스러워 할 정도로 예뻤다.  나는  메이의 귓털이 유난히 길어 귓털도 따주고 리본을 달아주고 예쁜 옷도 입히고 발정기때는 예쁜 전문 팬티도 입혔다.   공원에 가면 토끼처럼 뛰고 내 다리옆을 늘 따라 다니며 함부로 다른곳에 가지도 않았다.

음식 습관은 안좋아 주로 내가 손으로 먹여줘야 먹었고 제일 좋아 하는게 커피 였다.  메이의 커피잔은 따로 있을 정도고 나는 늘 메이를 데리고 각 커피숍을 다니곤 하였다.  13살이 되던 어느날 메이 가슴에 혹이 하나 생겼다.  의사는 아직은 괘찮다고 하더니 그 혹은 점점커지기 시작하여 후에는 손을 못쓸정도가 되었다.  메이는  결국 죽음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 심장이 나빠 수술도 어려웠고 혹이 너무 커졌다.   상해에 출장을 가야하는 나는 보모에게만 맡길수없어 정일 언니에게 구원을 청했다 언니는 만사를 제치고  메이를 돌보러 대만에 와주었다.  그렇게 나는 출장을 다니고 언니는 매달 메이를 위해 대만을 다녔다.  

언니가 한국으로 가는날 오전 메이가 침대에서 다른 애들에게 화를 내며 떨어졌다.  언니는 공항에서 마음이 안놓여 전화를 하고 나는 출근을 포기하고 메이를 돌보았다. 메이는 그렇게 오후 내내 거칠은 호흡을 하며 고통을 겪다 결국 밤에 최후의 호흡을 격렬하게 하며 두 앞다리를 길게 쭉 뻗으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 나는 이미 숨을 거둔 메이를 안고 한없이 서럽게 엉엉 울어댔다.  메이는 혹에서 고름이 나오면서도 몸에서는 전혀 나쁜 냄새가 없었고 죽어가면서도 우아함을 지켰다. 

날을 꼬박 새고 아침에 나는 메이를 데리고  늘 가는 화장터로 갔다. 그곳은  주로 개 고양이 단독 화장을 하는곳이다. 물론 토끼도 할수있다.  1층은 분화로가 있고 2층은 납골당으로 유골을  주인들이 그곳에 두고 1년에 얼마씩 비용을지불하고 자주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 장난감을 갖고  찾아와서 기도해주고 간다. 

작은 애완견은 1000 도의 온도에서 한시간 정도 걸려 화장이 완료 된다.  그야말로 한줌의 흰가루로 되어 나온다. 역시 작은 흰 단지에 메이 유골을 담아 집으로 왔다.  

 
사진 왼쪽  예쁜 마르치스는 메이를  데려 왔을때 너무 외로워하며 내성적이라 ( 돼지는 안놀아 주므로) 남자 마르치스 한마리를 2틀후 데려와서 메이 친구로 해주었다.   이름은  언니 가운데 이름을 따서 중국 발음으로 쩐쩐이다.  쩐쩐이는 너무 영리하고 양보심이 많았고 메이를 무척 좋아했다. 

1년이 안되었을때 눈이 약간 다친 것을 실력 없는 의사는  홍역으로눈이 그렇다며 입원을 시키고 엉뚱한 주사를 2주간 놓아  쩐이는 다리 하나를 늘 자면서 파르르 떨며 경련을 일으켰다   돌팔이 의사는 상처에 안맞는 눈약을 매일 넣고 호전이 안되자  내게 가망이 없다며 안락사를 권하였다.   당시  동물 상식이 별로 없던 나 였지만 너무 아닌듯하여 퇴원을 시키고 다른 병원에 데려다 주었더니 아무런 병도 없고 눈도 약을 넣지 말고 그녕두면 오히려 호전이 될것이라 하였다.
 

집에온 쩐쩐이는  밥도 잘먹고  눈은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완전 회복이 되었다.  실력없고 양심없는 의사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강아지들이 오진으로 죽어갈까 싶었다.   안락사를 당할뻔한 우리 쩐이 정말 끔찍하다. 쩐이는 그때의 오진으로 이상한 주사를 매일 많이 맞아  기관지도 나빠지고 심장도 나빠졌다.

8살이 되던 어느 해 심한 기침을 하며 괴로어 하던  쩐이는 내가 퇴근 하기를 기다렸다   아픈 몸으로도 나를 반기며 이제 안심이 되었다는듯 그날 밤에 피를 코로 쏟으며 세상을 떠났다. 돼지가 죽고 1년후 같은 6월에 20일날 쩐이가 떠났다.  당시 메이는 살아 있을때다.
 

피 와  배설물로 엉망이된 쩐이를 나는 몸이 굳기전에 목욕을 시키고 드라이를 하며 눈믈을 쏟으며 가는 길에 깨끗이 해주려고 하였다. 털을 빗기고  머리는 평상시와 같이 빨간 종이로 예쁘게 묶어 주었다.  꼭 예쁜 쩐이가 잠자는듯 했다. 눈도 감겨 주었다.    아침이 되자  화장을 하러 같은 발걸음을 했다.    난 부은 눈을 가리려고 검은 선그라스를 쓰고  대만여자 친구가  운전을 해주고  , 화장되는 쩐이를 끝까지 지켜보고 역시 유골단지를 들고 집으로 왔다. 쩐이는 정일 언니를 많이 따랐다. 언니가 한국에 돌아가면 언니가 자던 방문앞에서 며칠을 지키고 혼자 자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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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가운데 ( 쩐이 옆) 흰 페키니즈 한마리가 또 있다 . 시내 어느 동물 보호소에서 구해온 아이다.  나는 당시 애들이 셋이 있어 더 이상은 어렵다고 생각하고 옆 사무실 부부에게 부탁 기르도록 하였다.  그 집은 그 개를 뒷베랜다에 놓고 밥 만주고 별로 관찰을 안하였다. 

구정에 지방에 간다고 내게 맡겨 우리집에 오면 그 개는 너무도 즐거워 하고 우리집을 좋아 하였다.  마침 언니가 구정에 와있어  우리는 그여자 페키니즈를 뚤뚤 이라 이름을 지어 주었다. 뚤뚤이는 보호소에서 많은 애들로 인해 눈이 다친후 치료를 안해 두 눈이 다 멀었고 눈은 눈물이 나오지 않아 말라붙어 늘 먼지가 가득 눈에 묻어 있었다.    우리집에서  먼 두눈으로도 오줌도 잘 가리고 너무 착하였다.

성대 수술도 되어 있는것으로 보아 뚤이는  애견업자가  나이가 드니 길에 버린듯 하다.  뚤이는 밥도 너무 잘먹고 야채도 잘먹고 나무랄대 없는 아이였다.  옆 사무실 부부집으로 다시 가자  뚤이의 그 불행해 하는 표정은 정일 언니는 아직도잊을수 없다고 한다.   그후  뚤이는 자궁축농증이 걸려 이미 복수가 차고 손을 쓸수 없을때 내가 알고 우리집으로 데려와서 뒷날을 내가 돌보기로 하였다. 배가 너무 불러 엎드릴수도 없이 괴로워 했다.  수술도 불가능이라 하였다. 

그렇게 돌보기를 20일 정도 지나자  어느날 뚤이는 내가 자는 침대 옆으로 아침에 아픈 몸을 끌고 와서 안나오는 목소리로 울어댓다.  나는  잠에 빠져 손만 내려 뚤이 머리를 쓰다듬고 다시 잠에 빠졌다.  깨어나 느낌이 이상해 나가보니 내 방문앞에 뚤이가 죽어 있었다.  난 순간 울컥 했다. 내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일무러 내 침대 옆에와서 울었던 뚤이었다.

난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화장터 차를 불렀다. 부르면  봉고차가 와서 우리를 데리고 간다. 나는 있는 박스에 수건을 깔고 뚤이를 뉘인후 차에 탔다. 가는 도중 뚤이 몸에 작은 갈색먼지같은 것이  몰려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게 무엇인줄 잘 몰랐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것은 뚤이가 예전집에 있으면서   뒷베랜다서 안좋은 환경에 심한 피부병을 앓으며 몸에 개 이가 생겼던것이다.     이 들은 뚤이 몸이 차거워지자 모두 기어 나오는것 이었다. 뚤이 역시  한시간 동안 화장을 시키고  유골을 담은 단지를 안고 나는 전철을 타고 집으로 왔다. 왜 내가 뚤이를 처음부터 키우지를 않았나 하고 후회를 하며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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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른쪽에 있는유골단지 얼룩이 무니  15살은 된  이름은 소화라는  씩씩했던 남자개 이며 , 내가 집에서 기르지는 않았지만 회사를 다니며 소하를 돌본지 10년이 넘는다.  처음 소화를 보았을때 낯선 사람을 안따르고 무척 우직하고 충성스러워 보였다.    대만시 정부애서 운영하는 주차장 인데 어느 스님이 소화를 맡기고 가셨다 한다.

나는 늘 이곳에 차를 주차 하고는 하였다.   그후 나는 소화에게 밥도 주고  다정하게 대하기를 1년이 넘자 그때야 나는 믿고 따르기 시작 하였다.  주차장 관리원 제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따르지를 않았는데 나는 예외였다. 나중에는 모두를 제치고 나를 가장 따르게 되었다.   다른곳에 있다가도 내가 데려오지 않으면 그자리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데려올수 없었다. 
 

어느 나쁜 사람들은 소화가 짖는다고 돌로 소화를 때리고 도망가서 다리를 한동안 못쓰기도 하고, 쥐약을 잘못 먹어 구사일생으로 살아 나기도 하였다. 나는 매일 소화 밥을 챙기고 주말은 소화를 돌보기 위해 일부러 먼길을 운전하여가서 밥과 물을 주고는 하였다.   멀리서도 내 차가 오면 얼른 알고 반갑게 나를 반기었다. 

어느날 소하가 안보인다고  관리원이 내게 전회를 하였다.  ( 나를 소화 엄마라 부르며 내 연락처를 적어둠) 나는 급히 주차장으로 갔는데 안보인지  3일이 된다고 하였다  관리원들은  시정부서 유기견으로 알고 잡아간듯 하다고 내게 얘기 하였다.

빨리 구하지 않으면 그곳은 며칠내 가스로 모두 안락사를 시키는 곳이다. 난 놀라서 차를 몰고 시정부 보호소로 갔다. 난생처음 그곳을 갔다. 그곳은 많은 유기견이 잡혀와 고랑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고  정부소각장도 있는곳이다.  나는 소화를 찾으러 들어갔다.
 

음침하고 죽음의 느낌이 깔린 그곳은 어느 큰개는 목을 내놓고 애절하게  늑대처럼 울어댔다.  다른 강아지 얼굴을 보면 너무 불쌍해서 난 검정무늬 얼룩 소화만 찾았다. 한침을 찾다 한곳의 고랑에 소화 같은 애가 몸을 돌돌 말고 온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소화가 맞았다 그 늠늠한 모습은 어디가고 넑을 잃고 몸을 떨고 있었다. 소화, 소화 하고 부르자 느리게 얼굴을 돌려 나를 한참 보더니 이제야 정신이 난다는듯 황급히 일어나 고랑 창살을 긁으며 끙끙 거렸다. 고랑서 나온 소화는 보호소 마당을 펄쩍 펄쩍 너무도 좋아서 뛰어다녔다. 이제 살았다 하는 소화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꾸정물 투성이인 소화에게 마이크로 칩을 맞추고 내가 소화의 정식주인으로 시정부에 등록하고  예방 주사까지 맞추고 소화를 데리고 나오는데  주차장 관리원 3명이 마침 소화를 구하겠다고 보호소 문앞에 도척했다. 그래도 소화를 구하러 온 관리원들이 기특하게 느껴지고 흐믓 했다. 나는 소화를 그들의 차에 넘겨 주고 돌아 왔다 .
 

그렇게 파란만장한 삶을 겪던 소화는 나이가 들면서도 건강하게 잘 지냈는데 어느날  주차를 하던 어느 할아버지 차에 치어 그 자리서 숨을 거두었다, 나는 역시 관리원들의 긴급 연락을 받고 가서 소화의 마지막 길을 지켜주고 역시 유골단지를 안고 집으로 온후 다섯 애들의 단지를 차례로  사진과  같이  놓아주고  늘 함께하고 있다. 소화는 화장후 유골에서 드믈게 녹색 사리가 두개 발견이 되어 그장소에 있던 모든 이들을 놀라게 하였다. 늠늠하고 유난히 내게  충성이던  소화를 나는 잊지 못한다.


돼지가 떠난후 돼지를 그리며 데려온 애가 갈색 시츄 이름은 쑨쑨이다. 너무 순해서 지어준 이름이다.  지금 8살이 좀 넘었다. 

근처 까르프 매장에 가다가  길가 수도꼭지에 누가  묶어놓고 도망갔다. 낮에 보았는데 밤 10가 되도 그자리서 떨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닥아가니 두 귀를 뒤로 붙이고 앞발을 하나 내게 주며 금새 눈믈이 흐를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  좀 큰 사이즈 치와와 였다.  

곧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검사를 받고 목욕을 시키고 집으로 데려왔는데 뒷다리 하나는 못쓰고 저는 아이고 털이 몹시 빠졌다. 그러나 너무도  순하고 착한 천사 같았다.  남자 아이라 하도 다리를 곳곳에 들어 할수없이 베랜다에방을 만둘어주고 다니게 하였다. 이곳은 아열대라 겨울에 춥지않아 베랜다의 느낌이 한국과는 다르다. 나는 이름을 황이라 지어주고 황이가 우리집에 온지도 2년이 되었다. 갈수록 살이쪄서 고민이다.


방석을 유난이 좋아하는 홍이. 소화가 지내던 주차장에 누가 이 작은 애를 버리고 갔다.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시켰는데  중국으로    간다며 내게 돌려 주었다.  나이도 10살은 되었을 홍이는 겁도 많고 사람을 두려워하고 잘 안따른다.

마음에 상처가 심한듯 하여 내가 계속 기르고 있다. 우리집에 온지 일년이 넘어서야 나를 따르기 시작했다 지금은 내가 가는곳은 그림자 처럼 따라 다닌다. 홍이는 갈색 시츄 쑨이를 싫어하고 늘 쑨을 보고 입을 말고 끄르릉 거린다.


우리집 간판 가비는 역시 슈퍼를 다녀오는데  슈퍼 앞 스타 벅스 커피숍 앞에서 방황을 하는것을 구해 왔다.  차를 피할줄도 모르고 도저히 안되겠기에  그냥 갈수없어 역시 미용원서 약제로 목욕을 시킨후  집에 데리고 왔다.  건강해  보였고 마련해준 오줌판에 알아서 갔다. 밥도 잘 먹고 온순하였다. 작은 애들에게도 모두 양보하고 절대 싸우지 않았다 함부로 짖지도 않았다.

처음 발견 당시는 마르고 털은 완전 밀어 놓은 상태였다.  집에와서 살이붙고 털이 자라자 너무 귀여운  복스러운 모습으로 변하였다. 언니는 가비를 보자마자  열렬한 팬이 되었다. 하는짓도 몹시 귀여웠다. 가비도 자궁축농증에 걸렸으나 그간 경험이 쌓인 나는 쉽게 알아보고 미리 불임 수술로 치료를 해주었다. 그후 가비는 너무도  왕성하게 잘먹으며 살이 푹푹 찌기 시작 10키로가 나간다. 처음 왔을때가 5키로가 좀 안되었다.

워낙 여유있는 성격으로 화도 안내고 게을러서 움직이기를 싫어한다.  밖에 나가도 뛰는적이 없고 어슬렁 걷는다. 가비 얘기는 동물 이야기에 가끔 올리고 있다. 


쩐쩐이 남자 마르치스가 떠난후 데려온 여자 마르치스 아주 작고 깍쟁이며 원래 이름은 싼싼이 인데 하도 딸딸 거리고 다녀서 별명으로 딸딸이라 부르게되었다. 눈치 빠르고 영특한 딸이는 4달 되었을때 우리집에 오게 되었다.

지금 5살이 되었고 갈색 시츄 쑨쑨이를 제일 좋아한다. 종일 쑨이만 쫓아 다닌다. 쑨 과 딸을 우리는 실 과 바늘이라 부른다. 근데 딸이는 가비를 많이 싫어한다. 나와 있을때 가비가 오면 앙칼지게 짖고 물어주려고 한다.

맘좋은 가비는 절대 같이 싸우지 않고 늘 양보를 하고 피해준다 너무 억울하면 혼자서 허공을 보며 웡~웡~ 짖어댄다. 무늬 와 뚱뚱 하고 맘좋고 순한 스타일이 언니의 학규와 비슷해서 내가 가비를 학규엄마라 부르고 있다.

너무 예뻤던 딸이를 오늘 이정도의 모습으로 만든 나는 많이 미안하다
(평상시 내가 게을러 꼬지지 한적이 많으므로).밥도 잘 안먹고 약질인 딸이..,, 코도 영양 부족으로 허옇게 되고 털도 많이거칠어 졌다. 너무 밥을 잘 안먹고, 통먹는데 취미가 없어 가비 와 만두 를 의아하게 하는 우리 막내딸 이쁜이 딸딸이다. 딸이는 언니 와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은 안따른다. 딸이는 내가 데려오지 않았으면 애견업자들이 새끼만 낳게 하고
평생 고랑에서만 살다 갔을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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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이 내가 대만서 직접 기른 아이들의 모든 스토리이다. 그외  유기견 구조 등은 다음에 올리도록하겠다.  위에 쓴 바와 같이 학생때는 진정한 동물 사랑을 몰라  입양을 생각지도 못하고 예쁜 애들만 구입해 길렀다.  지금 생각 하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상식도 없어 돌팔이 의사 말을 믿어 애들이 고통도 당하였다.

이 모든것을 겪으며 이제는 어떻게 하는것이 옳은지 판단도 되고 , 남들에게  도움의 말을 주기도 한다. 참고로... 예전 젊을때는 출국시 동물 병원에 맡기고는 하였으나 십여년 전부터는 보모를 구해 출국때는 아침 저녁으로 우리집에와서 애들을 돌보고 있다. 죽은 돼지때도 보모가 한국으로 연락을 해주어 나는 급히 돌아올수 있었다.
 

한번에 모든 얘기를 쓰느라 너무 긴 얘기가 되어  이제 그만 줄이고 상해 출장을 다여온후  다시  글을 올리도록 하여야 겠다. 다음은 언니 애들을 구하게 된 얘기를 쓰도록 할것이며, 이만 쓰겠습니다. 

---  대만회원   이미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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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고 놀랬어요..

진짜 팡이는 다른집에선 키우지도 못하겠어요. 물린 정일언니손보고..무서워서..식은땀이^^ 저희 깜찍이도 팡이 정도는 아니지만 털 자를려고 하면 물려고 들거든요. 전 그때 마다 면테잎(약국에서 파는 반창고)으로 입을 동동 싼답니...

금돌이네 고양이일기(사진첨부)

  • 2003-09-11
  • 조회 수 1885
  • kaps

허브다섯메 에서 캣닢(개박하) 화분 네 개를 인터넷 주문하고 도착하기만 기다리는데, 의외로 빨리 도착했다. 경비아저씨께 건네받은 화분상자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니, 아이들 반응이 어떨까 궁금해 죽겠다. 아리와 허브 화분....

아기자기한 주영씨글 !

핵뀨야아~ ~~ 엄마글이 올라왔네! 학규는 학~소리만 내면 만사를 제치고 쪼르르~달려 옵니다. 하다못해 오줌을 누다가도.... 주영씨! 아기자기한 글 잘 읽었어요. 애들도 꿈을 꾼답니다. 우리학규가 또 꿈을 잘 꾸지요. 막 꽁알꽁...

아기자기한 주영씨글 !

  • 2003-08-31
  • 조회 수 1360
  • kaps

헉~~!!! 이렇게 빨리 글을 보실줄이야...-.-;;; 4층애들 밥주고, 이젠 퇴근하려고, 컴터를 끌려다 혹시나 확인했는데, 그새 답을 올리실줄이야... 정일씨는 동보협 홈피의 지킴이 같아요.^^ 잘못 글썼다 수정도 못할지도 모른다는 무서...

금돌이네 고양이일기

ㅎㅎ 너무 잼나게 글쓰셨어요~ 금돌이 꼭 한번 안아보고 싶어요. 넘 잘생겼더라구요..ㅎ 캣타워...와~~ 엄청 비싸던데..금돌이가 그맘을 알아줬음좋겠네요. 저도 가끔 마리와 깜찍이를 잃어버리거나 죽는꿈을 꿔요. 그러고 나면 아침...

대만 우리집 애기들 이야기와 사진

우리 애기들 스토리와 사진여러분 오늘은 대만에서 기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스토리를 사진과 함께 올려 보려 합니다. 예전에는 디카로 찍은것이 없어 이미 떠난 아이들의 유골 단지로 처음 23,년전부터기른 애들부터 소개하여...

잘 읽었습니다.^^

이 긴글을 어떻게 쓰셨을까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아침, 님 덕분에 웃기도 하고, 또 가슴아파하기도 하면서 글들을 읽었습니다... 저도 다음에는 짧은 삶이지만, 저의 동물이야기를 쓰고 싶네요.^^ -----------------...

잘 읽었습니다.^^(꼭 글 올려보세요! )

성 혜진회원님! 그렇지 않아도 이 긴글 쓰고 쓰러질뻔 했습니다. 워낙 올라오는 새로운 글들이 없어 사명감을 갖고.... 저는 내일 상해로 출장을 열흘 가는데 다녀와서 회원님 글이 동물이야기에 올랐나 기대해 볼께요. ------------...

정일씨의 편지- 공짜 피자 update

  • 2003-08-24
  • 조회 수 68025
  • kaps

- 오늘 피자 한판을 건졌네요- 정일씨의 편지를 여러분께 또 보여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금회장님,이게 무슨 제목인가 하시겠지요? 저도 웃기는 노여인 입니다. 오늘 전철타려고 에스카레이터를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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