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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식용 찬성.. 어이없음;;;
by 이경화 (*.102.87.252)
read 10392 vote 0 2006.03.27 (14:43:47)

개고기식용 반대의 비논리

  1. 사람과 친구인 개를 왜 잡아먹느냐?

  개 보호론자들은 개가 사람의 친구이므로 사람과 같이 대하라고 한다. 그러나, 서양에서 개를 사람과 친구라 하면 개가 사람과 같은 수준이 될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개와 친구를 하라는 것은 사람이 개같은 수준이 되라는 말이 된다. 즉, '개의 친구 = 개'라는 등식이 적용되어 '개같은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에게 짐승이라는 욕이 된다. 그러나, 개와 친구라고 생각하는 자에게는 욕이 되지 않는다. 삼단논법으로 살펴 보자.
  개는 사람과 친구나 반려자라고 하므로 '개=사람'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어 '사람=개'와 동격이 된다. 그러므로 '개는 사람과 같다. 고로 사람대접을 해 주어야 한다.'는 '사람은 개와 같다. 그러므로 개대접을 해 주어야 한다.'와 동격이다. 개를 아들딸로 보아 '개는 사람의 자식이다'라는 것은 '사람은 개의 자식이다'와 동격이므로 개를 사람으로 대하라는 사람들에게 '개같은 사람, 개같은 자식, 개같은 년'은 욕으로 성립될 수 없다. '사람같은 개'와 동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는 사람이다'라는 것은 '사람은 개다' 및 '나는 개다'와 동격이 되므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 '너는 개다'라고 하여도 된다.
   개보호론자들이 개와 친구라 하더라도 자기가 키우는 개에 한해서이다. 다른 사람의 개와 친구가 될 수 없는데도 보지도 못한 전세계의 수억마리의 개와 친구라고 한다. 그러나, 투견, 경비견, 수렵견, 대형 식용견은 그들이 접근하면 물어 죽이려고 한다. 프랑스만 하여도 개에게 물린 사람들이 연간 50만건이나 고소한다고 한다. 개가 사람을 친구라고 생각하면 물지 말아야 하는데, 개보호론자들이 접근하여도 가리지 않고 문다. 그러므로 개가 사람의 친구라는 것은 착각이고, 짝사랑이고, 어거지일 뿐이다. 개를 친구로 생각한다면 개에게 물려 죽어도 고소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그리고, 개를 친구로 하던, 개와 같은 수준이 되던 그것은 자신의 문제이다. 문제는 그러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강요하는 데 있다.


  2. 개가 사람의 배우자?


   개고기식용 반대론자들은 사람에게 인권이 있듯이 개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하여 견권(犬權)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개에게 무슨 사람과 같은 권리가 있는가?
  그리고, 개를 반려동물이라고 하는데, 반려자란 배우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개가 어떻게 사람의 배우자인가?
  식견관습은 식인관습과 같은 것이므로 없애야 한다고도 한다.
  개는 사람의 친구이므로 잡아먹으면 안 된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개를 사람으로 보았을 때만 가능한 극단적인 허구적 비논리이다. 말이나 생각은 만인이 이해할 수 있는 보편타당성을 가져야 하는데, 비교 대상이 아닌 것들을 비교하므로 사회 일반에 통용될 수도 없고, 이해를 얻을 수도 없다. 그런 신조어도 억지를 논리처럼 포장한 것이므로 사전에 나오지도 않는다.

  3. 개의 생명만 존엄하다?


   개고기 식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생명존중'을 첫번째 이유로 든다. 그러나 다른 동식물의 생명도 모두 소중하므로 개잡는 것만 시비걸 수 없다. 생명체는 사람에게 유익하게 보이던 유익하게 보이지 않던, 사람을 따르건 따르지 않건 모두 나름대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유익하게 보이지 않더라도 사람이 유익함을 발견하지 못하였을 뿐이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단백질, 지방질, 탄수화물로 구성되고, 유전자는 DNA이다. 그러므로, 생명존중을 외치려면 개는 물론 소, 돼지, 야채, 과일, 곡식, 나무열매도 먹지 말아야 한다. 같은 조상에서 갈린 형제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유전자와 개, 돼 및 소의 유전자는 5%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개를 잡아먹지 말자고 하려면 같은 촌수인 소와 돼지도 잡아 먹지 말아야 한다.
  채식은 동물보호보다 차원이 높은 것 같지만, 역시 다른 생명을 희생한다. 식물은 탄소동화작용으로 태양에너지를 전분에 받아들인다. 사람은 그것을 직접 섭취하거나, 다른 동물이 섭취한 것을 이차적으로 섭취하여 태양에너지를 이용한다.  사람은 이같이 다른 동식물을 착취 섭취하여 살아가는 종속영양생물로, 동물보호니, 채식이니, 개를 잡아먹으면 안 된다는 것은 자연계의 먹이사슬을 부정하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생물은 수십억년 동안 적자생존의 법칙과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서 강한 것은 살아남고 약한 것은 도태되면서 진화되어 왔다. 사람이 개를 잡아먹는 것도 약육강식의 법칙이므로 시비걸 일이 아니다 .
  그리고 사람을 먼저 보호하고 존중해야지, 개부터 보호하고 존중하자는 것도 잘못이다.
  개가 인간을 따르기 때문에, 사람과 친하기 때문에 개만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으로, 개를 보호하자고 하려면 다른 동식물도 같이 보호해야 공정한 것이다.
  슬견설을 통하여 그들의 잘못을 살펴본다.

  어떤 손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어떤 사람이  몽둥이로 개를 때려 죽이는데, 참혹하여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어떤 사람이 이를 잡아서  화로 속에 넣어 태워 죽이는 것을 보고 나는 마음이 아파서 다시는 이를 잡지 않기로 맹세했습니다."

  손님이 실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이는 미물이 아닙니까? 나는  큰 짐승이 죽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서 한 말인데,  이를 예로 드는 것은 놀리는 것이 아닙니까?"

  하였다. 나는 설명하였다.

  "무릇 생명이 있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소, 말, 돼지, 양, 벌레,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두 살기를 바라고 죽기를 싫어합니다. 어찌 큰 것만 죽기를 싫어하고, 작은 것만 죽기를 좋아하겠습니까? 그런즉, 개와 이의 죽음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큰 것과 작은 것을  대조한 것이지, 놀리기 위해서 한 말은 아닙니다. 열 손가락을 깨물어 보십시오. 엄지손가락만 아프고 나머지는 아프지 않습니까? 한 몸에 붙어 있으므로 크다 작다는 것과는 관계없이 아픔은 같은 것입니다. 하물며, 크다 작다는 기준으로 살아 있는 것이  어찌 저것은 죽기를 싫어하고 이것은 좋아할 턱이 있겠습니까? 달팽이의 뿔을 쇠뿔과 같이 보고, 메추리를 대붕과 같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

  4. 문화는 상대적이다

   인간의 문화는 민족, 언어, 종교, 풍습, 역사, 지리, 기후, 나라, 사회에 따라 다르게 발전하므로 문화가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할 수 없다. 그러나 서구인들은 다른 음식문화를 혐오하거나 비난하며, 동물보호 관련 단체는 한국의 개고기 식용을 야만이니 학대니 하면서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 개는 길러서 잡아먹던 가축의 하나에 지나지 않으며, 개고기를 먹어 온 역사는 기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우리의 음식문화이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 사람이 우리 음식문화를 참견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고, 우리가 다른 나라의 음식문화를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를 비난하면 안 된다.
  
   5. 서양문화의 우월주의 및 편파성

   서양인들은 동물성 식품을 상식한다. 그들은 동물을 고통없이 죽이면 학대가 아니고, 고통을 주면서 죽이면 학대라 한다. 그러나, 죽이는 것보다 더한 악랄함과 그것을 능가하는 학대는 없다. 그것은 동물의 피로 얼룩진 그네들의 식생활을 미화하고, 자위하기 위해 만들어낸 궤변일 뿐이다. 그런데도 동물보호론자들은 이 논리에 편승하여 식물성 식품 위주의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
   단백질 식품으로 서양에는 치즈가 있고, 동양에는 두부가 있다. 치즈는 우유 단백질을 뽑아내어 발효시킨 것이고, 두부는 콩의 단백질을 뽑아 낸 것이다. 치즈 만들 때 우유 단백질을 침전시키려고 송아지 위의 레닌(rennin, chymosin)이라는 효소를 얻기 위해 서양에서는 연간 2천만 마리의 송아지를 도살하고 있다. 반면, 우리 나라는 바닷물에서 얻는 간수로 콩단백질을 간단히 침전시켜서 두부를 얻고 있다. 어느 것이 더 인간적인가?
   투우에서 그들의 동양문화에 대한 무시와 서양문화에 대한 우월주의를 볼 수 있다. 투우는 소의 신경을 건드려서 사람을 공격하게 한 다음 거꾸러질 때까지 여러 개의 칼을 꽂아 고슴도치같이 만들어 피를 철철 흘리며 오랜 고통 속에 죽게 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서 좋다고 환호하고 박수친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이보다 더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동물학대는 없다. 그러나 계속되고 있다. 서양인이 하는 것은 문화적이라는 편견과 우월의식 때문이다. 투우가 우리 것이었다면 그들은 한국을 야만적인 나라라 하며 한국상품 불매와 월드컵 보이콧 등으로 난리를 치고 있을 것이다.
   나아가, 자기네 나라 타히티섬 주민이 개잡아 먹는 것은 놓아 두고 남의 나라 개잡아 먹는 것을 시비거는 프랑스의 브리지도 바르도의 오만과 독선은 어떤가?

  6. 애완견 사랑이야 말로 동물학대이다

   생물은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에 따라 강하고 우수한 것만 살아 남는다.
   개는 스스로 살아가던 동물로 늑대가 조상이다. 사람이 개를 기르게 되어 먹이를 편하게 얻게 되자 독립적 생존에 필요한 기능이 퇴화하고 있다. 사람이 개를 데리고 살수록 열성화를 촉진시켜서 스스로 살아갈 능력을 빼앗는다.
   개를 귀여워해 주고, 먹이를 주고, 잠잘 곳을 주고, 예방주사를 놓아주는 것은 개의 열성화를 촉진하는 일이다. 개가 할 일도 없고, 강한 형질로 단련할 기회도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애완견을 작고 예쁘게 교배시킬 수록 생존에 필요한 기능은 더 열화된다. 그래서 투쟁본능을 잃고, 약해져서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사람의 보호가 없어지면 멸종하게 된다. 개의 입장에서 보면 개를 열성화시키는 애완견 수요자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학대자이다.
   개를 인간 편리한 대로 길들여서 털을 깎고, 장신구를 붙여서 노리개로 하여 귀여워하는 것도 학대이다. 그런 것은 개가 바라는 바도 아니고 개에게 도움되는 일도 아니다. 사람이 저 좋아서 하는 일일 뿐이다.
   사람이 개를 데리고 사는 것도 학대이다. 개가 사람의 주인이라 할 때, 사람을 가족이나 인간사회에서 격리시켜서 개하고만 살게 하면 사람보호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사람끼리 살아야 하듯 개는 개끼리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같이 애완견 사랑이란 착각에 빠진 짝사랑의 자기만족으로, 개를 열성화시키는 악기능(惡機能)을 한다. 반면, 개고기 식용문화는 작고 약한 열성 개는 쓸모없으므로 도태시켜서 우수한 형질만 보존 유전시키는 순기능(順機能)을 한다.
   올 바르고 이상적인 동물보호는 사람이 손대지 않는 것이다. 힘이 약한 녀석은 도태되고 강한 우성 녀석만 살아나는 과정을 통하여 종족을 보호 번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여 인간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살아 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를 사랑한다면 사람이 키우지 말고 개끼리 살아가게 해야 한다.

   7. 서양문화의 공격성

   미국의 문화 인류학자인 마빈 해리스(M. Harris)는 음식문화의 수수께끼(서진영 옮김, 한길사, 1994)에서 '육식성문화에서는 개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성이나 곡식성문화에서 개고기를 주로 먹는다. 서양인들은 개를 사랑해서 잡아먹지 않는 것이 아니고 개보다 효율높은 육식동물이 있어서 잡아먹지 않는 것이다. --- 인류학자로서 음식맛의 문화적 상대주의를 지지한다. 식습관에 대해 단순히 다르다는 이유로 모욕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이렇듯 '문화는 상대적이므로 자기 기준으로 남의 나라 음식문화를 공격하면 안 된다'는 것이 철칙으로,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에 따라야 하듯 한국에서는 한국의 풍습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그를 무시하고 이중적 잣대와, 편파성과 비합리성으로 공격하고 있다. 그들의 공격 이유는 단 하나로, 사람과 친구인 개를 어떻게 잡아먹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개가 어떻게 사람과 친구인가? 개가 웃을 일이다.
   우리는 농경 정착민족으로 식물성 위주의 식사를 하며 온순한 반면, 서양인은 수렵목축 이동 민족으로 동물성 위주의 식사를 하며 호전적이다.
   서양사람들의 상징은 나이프와 포크로, 사람과 동물을 죽이던 칼과 삼지창으로 식사 때 고기를 베어서 찍어먹다가 만들어진 것이다. 칼과 삼지창으로 수많은 동물을 잡아 먹어 왔으면서 어쩌다 먹는 남의 나라 개고기를 시비 거는 것은 칼과 삼지창의 무력을 앞세운 서양문화가 동양문화를 없애려는 공격이다.
   서양인들이 자기들 시각이나, 가치관과 풍습과 다르다 하여 공격하고, 자기들 방식 대로 따르라는 강요하는 것은 우리 문화를 자기들 문화에 종속내지 동화시키라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을 자기들 방식대로 지배해야겠다는 침략적 사고이다.

   8. 애완견과 식용견

   한국에서는 자기가 기르던 애완견을 잡아먹는 사람은 그다지 없다. 시중에 식용으로 유통되는 개는 축견으로 전문 사육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마빈 해리스는 '음식문화의 수수께끼(1994)'에서 애완동물도 잡아먹을 수 있다고 하였다. 즉, 애완동물이기 때문에 잡아먹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를 애완용으로 키워서 잡아먹던, 식용견으로 키워서 잡아먹던 남이 참견할 일이 아니고, 남들이 시비 건다고 '애완견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고 식용견을 별도로 키워서 잡아먹는다'는 궁색한 변명이나 저자세로 나갈 일도 아니다. 개보호론자들이 우리에게 개를 사 주거나 사료를 사 준 것도 아닌 다음에야 그들에게 간섭받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9. 개를 잡아 먹는다고 개가 멸종되고 있는가?

   먹이사슬 중에 인간은 가장 위에 있으며, 어떤 것이나 식량으로 하고 있다. 육식 위주의 서양사람들이 아무리 소나 돼지를 많이 잡아 먹는다고 하여도 소나 돼지가 멸종위기에 처하는 일은 없다. 적정한 수를 번식시켜서 기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개를 잡아먹는다고 한국개가 멸종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개는 식용견으로 사육하고 있으며 잡은만치 번식시켜 기르기 때문이다.
   생태학적으로 보았을 때 개를 키우는 것은 개를 번식시켜서 개라는 종족이 멸종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일이다. 개를 식용견으로 키워서 잡아먹던, 애완견으로 키워서 사료로 만들던, 안락사시키던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개의 생존과 번식에 기여한 공로는 무시하고 도축만 문제삼는 동물보호는 엉터리이다.

  10. 개를 버리는 야만인들이 개고기 식용문화를 비판할 수 있는가?

   파리에서 버리는 개의 숫자는 일년에 10만 마리 정도라고 한다. 미국도 20년전까지 버린 개가 연간 1,800만 마리였고, 이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기 위해 매년 1억2천만 달러를 소비하였다. 지금은 연간 300만마리에서 7,500만마리로, 안락사시켜서 일부 매장하거나 동물 사료로 만든다. 광우병 파동은 개등을 잡아서 만든 사료를 소에게 주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일본은 집없는 개가 연간 26만 마리라고 하며 잡아서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태워서 없앤다고 한다. 대만의 집없는 개는 연간 200만마리, 루마니아도 200만마리, 이탈리아는 80만마리라 한다. 구미의 다른 나라의 사정도 비슷할 것이다. 이런 개들은 기르다 주인이 싫어서 버린 것들이 대부분으로, 돌아다니며 쓰레기 뒤지고, 아무 데나 똥오줌싸고, 더러운 곳에서 생활하여 병을 옮기게 되므로 잡아서 박멸하게 된다.
   기르던 개를 버려서 굶겨 죽이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일은 없다. 그러면서도 남의 나라 개고기 식용문화를 시비걸고 나오는 것처럼 오만한 일도 없다. 개를 버리는 것보다 신속히 도살하여 고통을 없애고, 고기는 먹는 것이 환경친화적이고, 식량확보에 도움되고, 인간적인 일이다.

   11. 학살과 안락사

   동물보호론자들은 한국에서 개를 잡는 것은 학살이고, 서양에서 안락사시키는 것은 영생의 평안함을 가져다 주는 인도적인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연간 수천만마리씩 개를 잡아서 개의 사료등으로 만들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없다. 오히려 안락사는 당연하다는 태도이다. 그러나, 죽이는 방법에 따라 어떤 것은 학살이고, 어떤 것은 인도적이라는 것은 웃기는 얘기이다. 스스로 죽기를 원하는 개가 어디에 있는가? 사람을 강제로 죽이고서 안락사시켰다고 살인이 아니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자기들 편한 대로 학살과 안락사를 구분지어 놓고 안락사는 얼마든지 시켜도 되는 정당하고 인도적이라는 것은 동물의 생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신이라는 것과 다름 없다. 여기서도 서양인들의 우월주의와 독선을 볼 수 있는 것이다.  

  12. 개고기 식용 비난의 논리와 근거가 없다

   개고기 식용 반대론자들은 한국의 개고기 식용은 전통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뒷받침할 논문이나 책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한국에서 개를 때려잡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 논문이나 책도 없다. 반대로 한국의 개고기 식용은 전통이라는 근거, 논문 및 책은 무수하다.
  논문은 수많은 증거와 사실들을 바탕으로 자기가 나타내고자 하는 이론이나 주장을 객관적으로 펴는 것으로, 심사 과정에서 객관성이 없거나, 수준이 낮거나, 거짓이 있으면 탈락된다. 개고기 식용 반대 논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그들 주장이 논문으로 인정받을만한 가치와 근거가 없어서이다. 그리고, 옳다면 점잖게 논리를 펴도 만인이 모두 이해한다. 개고기 식용을 반대할 논리가 부족하자 개고기 식용 반대론자들은 인터넷에 숨어서 욕이나 하는 것이다.
  동물보호론자들은 한국에서 개를 매달아서 고통을 주면서 때려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에서 연간 잡는 개의 몇 %가 전기도살이고, 몇 %는 타살이고, 몇 %가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작대기로 고통을 주면서 때려잡고 있는지 수치와 그런 결과를 얻은 장소와 통계처리 방법 등의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출처를 알기 힘든 개잡는 사진 몇 장만 가지고 한국은 개를 고통을 주면서 때려잡는 야만국가라고 전세계에 선전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개를 고통을 주면서 때려잡으려면 한 마리 한 마리 철망 안에서 끄집어내느라 실랑이하고, 매다느라 실랑이하고, 그러다가 물릴 위험성도 있고, 식용견은 커서 목을 매 달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최소한 한 시간 이상 소요되고 인건비가 많이 들어서 타산이 맞지 않아 때려 잡을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 전기도살 방법을 사용한다, 전기도살은 철망 안에 있는 개 서너 마리를 일 이분 내에 모두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이 개고기 식용을 반대하는 자들의 주장은 거짓이므로 논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에는 식용견이 별도로 있다고 하는데 데 대하여, 개고기 식용 반대론자들은 애완견도 잡아 먹고, 식용견 품종이 별도로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애완견은 맛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서 잘 잡아먹지 않으며, 잡아먹는다 하여도 일부이다. 그런 데도 우리 나라 전체가 애완견을 잡아먹는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많은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개고기 식용 찬성율은 80% 정도이다. 그러나 개고기 식용 반대론자들은 '국민의 대다수가 개고기 식용을 반대한다'고 허위 주장하고 있으며, 역시 믿을 만한 통계자료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13. 종교적 수준의 개 숭배

  개고기 식용 반대론은 명분과 논리가 없다. 그런데도 개고기 식용 반대론자들은 절대적 신념을 가지고 옳다고 하며, 강요하고,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욕하며 공격한다. 개를 신과 동격으로 여기기 때문으로 다음과 같은 종교성과 노예성, 편협성을 나타낸다.

  첫째,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신성시한다

  인간사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우선으로 한다. 그러나 개고기 식용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부모형제나 조상보다 개를 더 섬기고, 개와 살며, 사람보다 개를 우선으로 하고, 호화스런 먹이와 치장을 해 주고, 죽으면 호화로운 장례를 치르고, 묘지에 묻고 비석을 세운다. 그들은 막무가내로, 그런 행태를 비판하는 사람이나, 개고기 먹는 사람을 야만인이니 악마(이교도)라 하며 공격한다. 개를 신의 수준으로 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고기 식용 반대 주장에 종교 용어적 욕설과 저주가 많다. 종교는 논리가 필요 없고 아군이냐 적군(이교도)이냐 하는 척도만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느님이 말기 암환자를 고치고, 앉은뱅이를 일어서게 한다고 사람을 끌어모으는 사이비 종교처럼 한국에서 개를 때려잡고 있다는 거짓말로 개를 구원하자고 세뇌하여 견교도(犬敎徒)들을 끌어 모은다.  종교는 믿음이 바탕이다. 반복되는 세뇌로 거짓말도 정말로 믿고, 광신적인 행동도 성스럽게 생각하여 개를 신으로 모시는 개의 천국을 구현하려고 한다.

  둘째, 이교도에 대하여 배타적이다

  종교의 특징은 배타성이다. 성리학(儒學)은 종교가 아니지만 한국인의 의식을 이루는 근간이므로 다른 종교가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래서 종교나 되는 것처럼 유교(儒敎)라 하여 공격 대상으로 하고 있다. 없애야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개고기 문제도 먹지 않는 사람은 선인(문명인), 먹는 사람은 악인, 즉 이교도(악마)이며 야만인이라 하여 타도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셋째, 유아독존의 독선이다

  동물보호는 불교 이상이 없다. 살아 있는 것은 개미 한 마리도 죽이지 말라는 부처님 말씀에 따라 살아 있는 생명은 모두 소중히 여기며 수천년동안 동물을 보호하여 왔다. 이들의 공로는 태양과 같은데도 불교에서는 동물보호를 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으며, 자랑도 하지 않고 묵묵히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개고기식용 반대론자들의 업적은 불교에 비하면 반딧불에 지나지 않는 데도 서양인들을 등에 없고 자기들만 동물보호를 할 자격이 있고, 동물 중에서 개만 보호할 가치가 있고, 굶주리는 사람보다 개를 보호해야 하고, 개의 권리는 보호하고, 인권은 무시하고, 자기들은 어떤 짓을 해도 정당하고, 자기들만 심판자로서의 자격이 있다고 기고만장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남에게 개를 사 주었는가 사료를 사 주었는가, 돌보아 주기라도 하였는가? 무자격자들이다.

  넷째, 전통문화와 역사를 부정한다

  한 나라를 침략하는 데는 4단계가 있다. 첫단계는 종교를 앞세워서 토속 신앙이나 문화, 가치관을 말살시킨다. 둘째 단계는 상인들을 내세워서 경제력을 착취하고, 셋째 단계는 군대가 들어와서 힘으로 억압하고, 넷째 단계는 정치인이 들어와서 식민지로 통치한다.


  종교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려면 토속신앙과 가치관 및 문화를 말살해야 저항이 없다. 우리나라를 침략한 외세는 저항을 없애기 위하여 국민들이 자기를 비하하도록 교육시켰다. 그래서 우리 문화와 역사는 일본이나 서양열국보다 열등하고, 일본이나 서양열국의 것은 다 옳고 우월하다는 사대주의가 팽배하고, 사대주의자들은 해방 후 일본에서 미국으로 버스만 갈아탄 데 지나지 않는다. 그 결과, 수입종교는 성스럽고, 그들이 섬기는 신은 지고무쌍한 반면, 토속종교는 미신이고 토속신은 귀신이라고 평가절하하게 되었다. 제사도 우상숭배라 하여 못 지내게 하고, 단군도 우상이라 하여 동상의 목을 친다. 마찬가지로 개고기 먹는 한국인은 야만인(악마, 이교도), 개고기 안 먹는 사람은 문명인이라 하여 우리 문화를 부정하고 비하시키고 있다.


  서양종교를 한국에 전파하다가 죽은 사람을 순교자라고 하지만, 조선조 입장에서는 그들이 백성에게 다른 존재(하느님)를 섬기게 하여 왕권을 부정하였으므로 탄압한 것이다. 하느님이 왕보다 높고, 왕도 하느님의 종이라 하여 백성들이 왕을 따르지 않게 하여 나라를 망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일본도 일찍이 기독교가 도입되었으나 기독교도들이 체제와 가치관을 부정하는 반란을 일으켜서 토벌한 역사가 있다.

  14. 올 바른 동물보호운동

    세계에는 굶어죽는 사람, 전쟁으로 죽는 사람, 학대받는 사람, 고통받는 사람이 무수하다. 1998년도는 세계에서 8억의 인구가 영양실조에 걸렸고, 1800만명이 굶어죽었다고 한다. 미국만 하여도 9명중 하나는 끼니를 거른다고 한다. 북한 주민도 굶주려서 죽어가는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도 굶주리는 사람이 많다. 순리 대로라면 인간을 먼저 도와야 한다. 개를 걱정할 일이 아닌 것이다.
  서양에서 버리는 개는 한국에서 식용하는 개보다 많고, 기르던 개를 버리는 것처럼 악랄한 일은 없다. 굶어 죽어가는 절박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자기들은 기르던 개를 버리면서 남의 나라 개고기 음식을 비판하는 동물보호란 사이비이며, 비인간적이다. 그것이야 말로 개와 관련된 속담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 나무란다'로 비유될 것이다.
   외국 동물보호단체들이 개고기 식용을 공격하는 데 가장 앞세우는 이유는 한국인이 개를 때려서 잡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새빨간 거짓말이다.
   1983년 10월 유럽 공동체(EEC)는 바다표범의 유럽내 수입을 금지시켰다. 이것은 1964년부터 20년 이상 그를 위해 투쟁한 국제동물복지기금(International fund for animal welfare, IFAW)과 그린피스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겨주었다. 이것은 서구인들에게는 문명의 승리였지만 바다표범고기를 주식으로 하고, 가죽을 팔아 생계를 잇던 '야만적'이라는 캐나다 이누이트(에스키모)의 음식문화를 파괴시키고 생계수단을 박탈시켰다. 서구 '문명인'들은 바다표범 새끼를 보호하자고 데모하였지만 이누이트들은 새끼표범을 잡은 일이 없다. 이누이트의 사냥과 음식문화는 북극 자연의 먹이사슬의 한 축을 이루는 자연의 일부였던 것이다. 이누이트들이 공동사냥을 통해 구축된 사회적 결속력과 전통, 사냥감 분배를 통해 유지되어 왔던 유대는 바다표범 사냥 금지로 붕괴되었고, 음식이 바뀌어 건강을 상실하고, 질병을 앓고, 청소년 자살과 마약중독과 알코올 중독으로 전통과 문화가 파괴되어 '문명화'되지 못한 채 연금이나 받아 먹는 무기력한 종족이 되고 말았다. 반면, 당시 IFWA의 Brian Davis 회장은 그 일로 유명해져서 수십만불짜리 월급을 받는 인사가 되었고, 그린피스의 Patrick Moore 회장은 연어 양식업으로 배부르게 잘 살고 있다.(브리지도 바르도 너나 잘해, http:www//.ddanzi.com/ddanziilbo/22/22-s8.htm).
   한국의 개고기 식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개를 잔학하게 때려 죽이기 때문이라지만 필자가 연구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개는 대부분 전기로 순식간에 도살하여 고통을 주지 않고 있다. 이것은 잡지도 않는 바다표범 새끼를 잡는다고 공격한 것과 같은 거짓말이다.
  한국의 개가 멸종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유럽인들처럼 개를 기르다 버리는 일도 없는데 사람보다 개를 보호하자고 하며, 한국의 개고기 식용을 공격하는 것은 백인들의 혐오정서를 극대화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이다.
  중국과 북한도 개고기를 일상적으로 먹고 있지만 한국을 주로 공략하는 이유는 사대적인 정치가들 덕에 효과가 크고, 중국과 북한은 개고기를 못 먹게 하여도 대신 쇠고기를 수입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15. 전통가족 붕괴에 따른 인간성의 실종 - 애완견 사랑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개를 위하여 사람을 희생하라고  하고, 개를 인격체로, 사람으로, 친구로, 식구로 대하라고 강요하는 자들이 있는데 생태학적으로, 인간적으로, 정서적으로,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전통 가정은 가부장이 자식들에게 학문과 농사, 윤리 도덕을 가르쳤기 때문에 어른을 공경하였다. 그러나 함께 살던 대가족 전통은 물질문명으로 무너지고 핵가족이 되고 어른들에게서 배우던 학문이나 경험은 학교와 TV를 통하여 배우고, 인터넷이나 컴퓨터는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애들에게 배워야 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자 애들은 어른을 존경하지 않게 되었다.

  부모들은 맞벌이 하느라 자식 돌볼 시간이 없고, 잘못된 일을 야단쳐서 바로 잡아줄 할머니 할아버지도 없다. 젊은 어머니들은 자기 자식만 귀하게 여겨서 싸고 돌아 남의 자식이나 어른들을 우습게 알도록 키운다. 애들은 부모의 사랑을 받을 시간이 적고, 학원에 가느라 사람들과 어울려 놀 시간이 없고, 컴퓨터, 인터넷, 오락 등으로 혼자 만의 세계에서 논다.  그런 환경에서 애들은 개와 주로 놀게 되어 개를 가족이나 친구로 여길 정도로 사랑하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큰 애들은  다른 사람에게 개를 사람 취급하라고 강요하며, '사람과 친구인 개를 어떻게 잡아먹느냐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어릴 때 뿐 아니라  어른이 된 뒤에도 그런 억지를 쓴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인간생활을 겪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생태학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개를 더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난 변종이고, 정신이상이다.
  이들은 편협하여 서양인들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원주민과 문화를 말살한 것처럼 개고기 식용문화를 말살하려고 하며, 비논리적이고, 비타협적이고, 배타적이고, 폭력적인데, 정상적인 사람을 공격하여 피해를 주므로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
  개고기 산업 관련자들은 반대론자들의 공격에 대하여  참고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극성인 반대론자보다 보신탕집 주인 편이 많다.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세상에서는 아무리 자기 생각이 옳다 하더라도 다른 주장도 포용해야 하는 것이다. 불교와 기독교는 교리상 서로 양립하기 힘들지만 비방이나 공격을 자제하고 있다. 세상은 혼자 만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존하는 것이다.
  안교수는 30살이 넘을 때까지 시골에서 살았는데 대학교 2학년 때 전기가 들어온 옛날 동네이다. 그때까지 집에서 개잡아먹는 것은 당연한 일로 개를 잡으면 밖에 나간 식구들과 동네 사람들을 불러서 잔치를 하였다. 개고기를 매개체로 결속을 다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개고기 먹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개고기 식용은 전통이 아니라는 허무맹랑한 얘기가 돌고, 인터넷상에서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아버지, 할아버지 등의 어른에 대하여 개고기 먹는다고 욕을 하고 야만인이라 하고 있다. 그런 자들이 커서 올림픽, 월드컵을 이유로 개고기 식용을 금지하자고 한다.
  개를 집에서 잡아먹던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 근거없이 개고기 식용은 전통이 아니라면서 부정하고 반대하는 것은 일본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부정하면서 끊임없이 시비 거는 것과  같다.



아래 사이트에 가면 더욱 많은 자료가 있습니다.

http://wolf.ok.ac.kr/~annyg/







전통전통.. 그놈의 전통..-_-
여자와 북어는 3일에 한번씩 패는거나..
나이든 노모를 버리는 고려장도 부활시켜라!! 우리의 전통아니냐!
아우~~~

고중철

2006.03.27 (20:46:10)
*.26.138.231

아는 단어 총동원해 개고기 먹고싶은 마음을 절박하게 드러내느라 애썼지만 인간으로서의 추함을 감추지 못한다는걸 본인도 알것이다. 무식함과 억지가 궤변으로도 감춰지지 않으니 긴글쓰는 손가락의 수고가 헛됨이 안쓰럽다.
안교수와 그 일당들은 제비다리 고쳐준 흥부의 이야기를 어떻게 자식들한테 교육시킬까?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법칙에 어긋난 한 멍청한 인간의 헛수고?
그래도 이나라에서 개고기 식용이 불법화 되는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세라이

2006.03.27 (21:13:23)
*.48.75.35

개고기 박사라는 별명이 부끄러운 지도 모르는 인간이예요. 이사람 말 듣고 개고기 먹은 사람들 고혈압이나 중풍 걸리면 손해배상 청구해야 합니다. 교수란 인간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 국민경제와 보건에 해를 끼치는 이론이나 펼치고. 썩은 음식이 예쁜 그릇에 담기면 건강한 음식으로 둔갑하는 것 아닌데 그럴싸한 용어로 개식용을 변호하면 악습이 전통으로 둔갑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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