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법인 한국동물보호협회
read 18017 vote 0 2018.04.19 (04:30:44)

고양이 보호소에는 '왕자'라는 이름의 야생고양이가 있습니다.

바로 2018년 KAPS 달력의 11월 모델이 된 녀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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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달력 모델이 된 길고양이 '왕자'





2017년 7월 중순.

무척 더운 어느 날.


협회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다급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수성구에 사는 젊은 여성분으로, 골반뼈가 부러져 걷지 못하는 길고양이를 구조해 줄 수 없냐는 구조 요청 전화였습니다.

그 당시 고양이 보호소는 이미 봄에 태어나 어미가 미처 거두지 못하고 버려진 새끼고양이들로 너무 많이 붐볐기에 더 이상 자리가 없던 터라 구조가 힘들다는 대답을 하였지만, 수화기 너머로 구조를 요청하신 여성은 잠시 가만히 계시더니 이내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연인 즉, 다친 길고양이는 본인이 밥을 주던 길고양이로 어느 날 다쳐서 걷지 못하고 밥 주는 곳 근처에 누워있길래 본인이 그 고양이를 이불로 감싸 안고 동물병원에 데려갔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엑스레이 결과 길고양이는 골반뼈가 부려져 있었고, 야생기질이 강해 순순히 치료하기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수술하려면 수술비로 동물병원에서 5백만 원 정도가 청구된다고 말했습니다.

그 큰 금액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구조자는 여기저기 대구시에서 도와줄 수 있을 만한 곳은 다 전화해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구청, 시청, 유기동물보호센터, 수의사회...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같이 도와줄 수 없다는 내용뿐이었고, 수술할 수 없고, 달리 돌봐줄 곳을 찾지 못한다면 이대로 안락사가 할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대답을 수의사 선생님으로 부터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해 있는 고양이를 마지막으로 보러갔을 때 고양이의 생생한 눈을 보니 도저히 안락사 결정을 본인 스스로 내릴 수 없어 마지막 희망을 안고 협회로 전화를 건 것이었습니다.

이 분이 원하는 것은 협회에서 그 고양이를 그냥 받아만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본인은 다친 고양이의 안락사 결정도, 그렇다고 다친 채 그냥 풀어줄 수도, 아니면 수술을  해줄 수도 없는 상황이니, 협회 보호소에서 받아만 달라고...

수화기 넘어도 울면서 부탁하는 그 전화를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본인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마지막 부탁을 하는 그 심정은 어떻게 모를수 있나요!

이 일을 하다 보면 수없이 겪는 일이지만 이런 상황이 닥치면 어떤 심정으로 전화를 했는지 너무도 잘 알기에 아무리 보호소에 빈자리가 없을 때라도 절대 거절하지 못합니다. 아니 무엇보다도 괴롭고 힘든 일이 바로 공간적 제약, 재정 제약, 인력 부족 때문에 어쩔수 없이

다친 동물을 거절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한마리 더 구할 수 있다는 걸 아는 한, 적어도 다친 동물을 보살펴 본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안락사 되느니 이곳 보호소에서 한번이라도 회복의 기회를 얻어 보도록 노력하는 게 이 길고양이에게는 최선이었습니다.

그렇게 골반뼈가 부러진 길고양이 '왕자'는 구조자 류정씨에 의해 협회 보호소로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입소 당일 류정씨는 고양이에게 '왕자'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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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왕자' 엑스레이 사진.


고양이 '왕자'는 전화 통화로 들었을 때 생각했던 것 보다 직접 눈으로 보니 그다지 상태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희망적인 것은 식욕을 느낀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성격은 완전 야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곳 보호소에는 다쳐서 입소한 수많은 야생 고양이가 있었고,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야생고양이와 가깝게 지냈으니 왕자의 야생기질이 생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다친 야생동물이 보살핌을 허락하도록 사람을 믿게 만드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실제로 한고생 해야합니다.)


'왕자'의 경우 골반뼈가 부러졌고 잘못하면 배변에 장애를 겪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협회는 그동안 수많은 골반뼈 골절 고양이를 구조하였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왕자'의 경우도 수의사 선생님과 상의 하여 되도록 수술 없이 치료하되 필요 불가결한 경우 수술을 하기로 하고 치료 방향을 잡았습니다.


 보살피기 시작한지 보름이 지나자 왕자는 조금씩 일어나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불행히도 회복하기 시작할 때쯤의 왕자 모습을 사진으로 담지 못했습니다. 워낙 야생 기질이 강해 필요한 경우 외에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맘때쯤 CCTV로 잡힌 왕자의 모습이 전부입니다. 왕자는 밥먹을 때, 물 먹을때, 필요한 경우만 조금씩 움직일 뿐이고 매일 매일을 보호소에서 회복하며 조용히 보냈습니다.



▲조금씩 걷고 밥도 스스로 먹기 시작한 왕자, 아직 걷는 것이나 눕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왕자.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처음에는 조심스레 걷는 것이 전부였던 왕자는 이제 점프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여느 야생고양이와 다를 바 없이 보호소를 제 집처럼 여기고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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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왕자' 모습, 보호소 생활로 많이 온순해 졌지만 여전히 사람이 다가가면 멀리 멀리 피하는 '왕자' 




▲왕자는 지금도 근접 촬영이 힘듭니다. 멀리서 찍는게 전부.



그래서 왕자의 활동 상황은 주로 cctv를 통해 보게 됩니다.

 

▼가장 최근의 왕자 모습



왕자는 건강하게 회복하여 중성화 수술도 무사히 마치고 새로운 고양이 보호소의 터줏대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덩치도 좋고 다른 고양이들에게 마음도 좋은 숫컷 고양이 '왕자'.

부디 이곳에서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살아 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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